Q.
요즘 ‘유동성이 지나치게 늘고 있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수년간 10%를 크게 넘지 않았던 유동성 증가율이 최근 몇 달 동안 15%대로 높아졌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유동성이란 뭐고, 많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길래 경제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걸까요. 닥터 이코노미에게 물어봅시다.
A.
유동성이 뭐죠
사전적으로 유동성이란 ‘어떤 자산을 필요한 시기에 손실 없이 현금으로 얼마나 쉽게 바꿀 수 있는 지를 나타내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언급하는 유동성은 경제안에서 유통되고 있는 돈의 양, 즉 통화량과 구별 없이 쓰이곤 하죠.
여기서 통화란 지폐와 동전 같은 현금뿐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의 금융자산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현찰 아닌 금융자산이라도 현금으로 바꿀 수 있거나 현금을 대신해 일상적인 거래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요구불예금의 경우 필요할 때 예금주가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기 때문에(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과 비슷한 효과를 가집니다. 은행에 보통예금 계좌를 개설한 사람이면 누구나 인터넷뱅킹이나 텔레뱅킹을 통해 손쉽게 물건을 살 수 있고, 기업도 수표를 발행해 거래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은행에 예치하는 정기예금, 정기적금의 경우에도 이자를 조금만 포기하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으며 그 밖에 주식, 채권 등도 경우에 따라 판매 가격을 다소 낮추면 쉽게 현금화 할 수 있기 때문에 통화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겁니다.
유동성은 어떻게 표현되나요
이 같은 유동성의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지표를 통화지표 또는 유동성지표라고 합니다. 다양한 금융자산중 어디까지를 돈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여러 종류의 통화지표가 작성ㆍ발표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화지표는 각각이 포괄하는 범위에 따라 협의통화(M1), 광의통화(M2), 금융기관유동성(Lf), 광의유동성(L) 등으로 구분됩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M1은 가장 좁은 의미의 통화지표로서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에 요구불예금 및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을 포함합니다. M2는 M1보다 조금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로, M1에 정기 예ㆍ적금 등 2년 미만 금융상품을 포함하는 것으로 가장 중심적인 통화지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 Lf, L로 갈수록 포괄범위가 점점 넓어져, L의 경우 기업 및 정부 등이 발행하는 금융상품 등까지 포함됩니다.
유동성은 어떻게 해서 줄거나 늘게 되나요.
시중의 유동성, 즉 통화량도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조화에 따라 결정됩니다.
먼저 통화에 대한 수요는 소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활발히 이루어져 소득이 늘어나면 그 만큼 상품ㆍ서비스 거래가 많아지고 통화수요가 늘어나게 되겠지요.
통화수요는 또 금리에 의해서도 좌우됩니다. 금리는 돈을 빌렸을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금리가 높으면 통화수요가 줄어들고 반대로 금리가 낮으면 통화수요는 증대됩니다.
공급은 어떨까요. 흔히 돈을 찍어내는 중앙은행에 의해 독점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일반은행을 통해서도 공급은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갑이 A은행에 100만원을 예금하면 A은행은 늘어난 예금 중 일부분(5만원이라고 해보죠)을 예금자가 찾아갈 것에 대비해 ‘지급준비금’이라는 명목으로 떼어 놓고 나머지 95만원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대출합니다.
갑이 맡긴 100만원도 유동성이지만 이를 밑천으로 A은행이 빌려준 95만원도 역시 새로 탄생한 유동성인 셈이지요. 이처럼 은행에 의해 창출되는 유동성을 파생통화라고 한답니다. 은행이 보관하는 지급준비금을 통해서도 통화량은 달라질 수(풀어읽는 키워드 참조) 있습니다.
유동성은 왜 늘어나는 거죠
지난해 10월 이후 M2 증가율은 점차적 상승세를 탔습니다. 특히 지난 5월에는 15.8%까지 올라, 거의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통화량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은행대출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파생통화가 많아지면서 시중 유동성이 증가한 것이죠.
최근 은행대출이 크게 늘어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가운데는 주택구입과 관련한 가계의 대출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 신규사업 진출 등을 위한 기업의 대출수요가 급증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여기에 지난 몇 년간 수익을 많이 낸 은행들이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공격적으로 대출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유동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입니다.
유동성 증가는 뭐가 문제인가요
개인이라면 가진 돈이 많을수록 부자가 되어 좋을 겁니다. 그러면 국가도 통화량이 늘어나면 부국이 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중에 돈이 너무 적게 풀려 있으면 경제활동에 필요한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해서 경제가 위축되지만, 반대로 시중에 돈이 필요 이상으로 풀려 있어도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가계나 기업의 경제활동에 비해 유동성이 지나치게 많으면 결국 돈의 가치가 하락합니다. 가령 통화량이 늘어 소득이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2배 늘어나더라도 과자 한 봉지 값이 500원에서 1,000원으로 2배 오른다면 과자를 예전보다 더 많이 살 수는 없겠지요. 이런 경우에는 유동성 증가로 인해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만 오르게 되겠지요.
또 시중에 늘어난 통화량이 당장 물가를 상승시키지 않더라도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경우, 이들 자산에 대한 수요를 증폭시켜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거품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강기윤 한국은행 조사역
■ 풀어읽는 키워드
◆지급준비금을 통한 통화량 조절
은행의 현금 준비율 조절로 시중 통화량도 줄거나 늘어
은행은 고객이 예금을 찾으러 왔을 때 언제라도 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맡긴 돈을 모두 대출로 내주고는 정작 고객이 달라고 할 때 돈이 없다면 곤란하겠죠?
그래서 은행들은 늘 예금의 일정비율을 현금 및 유동성 자산으로 의무적으로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이 자산을 '지급준비금'이라 하고, 이 자산이 예금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고 부르지요. 현행법상 지급준비율은 예금 종류에 따라 0~7%로 다양합니다.
중앙은행은 경제상황에 따라 지급준비율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올리면 은행들은 더 많은 지급준비금을 보유해야 하므로 대출할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고 따라서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도 줄어들게 됩니다. 반대로 지급준비율을 내리면 은행이 대출할 수 있는 금액이 늘어 시중의 통화량도 증가하게 되지요.
이렇게 지급준비금의 규모를 조절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지급준비정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급준비율은 조금만 조정해도 국가 전체의 통화량이나 은행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율을 자주 조정하지는 않고 있답니다.
■ 유동성 지나치게 늘어나면…
과도한 유동성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른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가 요즘 세계 경제를 발목 잡고 있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라 할 수 있는데요.
2001년 IT산업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 치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연 6%였던 정책금리를 2년 반 동안 연 1%까지 내렸습니다. 금리를 낮춰 시중에 돈(유동성)을 풀리게 하면서 경기부양을 노렸던 거죠. 그 결과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근 3년간 2%도 안되는 저금리 상태가 지속됐는데요, 바로 이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금리가 낮아지자 사람들은 손쉽게 빚을 내 집을 사기 시작했고 폭발적으로 늘어난 부채는 시중유동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FRB가 뒤늦게 금리를 다시 올리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계속 치솟는 집값을 믿고 여전히 낮은 수준인 대출을 마구 받아 써 댔죠.
이렇게 늘어난 유동성은 파생상품투자의 형태로 금융회사 곳곳에 퍼져나갔는데요. 2006년부터 집값이 급락하기 시작하자 대출을 못 갚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결국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부실해 지고 경제 전체까지 휘청거리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요즘 전문가들은 적당한 시기에 다시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죄지 않았다는 이유로 앨런 그린스펀 전 FRB의장을 비난하곤 합니다.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이웃나라 일본의 1990년대 장기침체 역시 발단은 지나친 유동성의 결과였습니다. 일본은행은 1985년 플라자 합의(엔화환율 절상을 유도하는 국제적 합의) 이후 경기진작 차원에서 정책금리를 5%에서 2.5%까지 낮췄습니다. 은행들은 저금리를 틈타 부동산 대출을 크게 늘렸고 넘치는 유동성 덕분에 땅값은 85~90년 사이 3배 이상 뛰었죠. 하지만 지나친 땅값 상승을 우려한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다시 올리는 등 갑작스런 유동성 잡기에 나서면서 95년까지 땅값은 다시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됐습니다. 금융기관이 부실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결국 두 나라 모두가 지나친 유동성이 거품을 키웠고 결국은 견디다 못해 터져버린 사례라 할 수 있는데요. 최근 불경기인데도 대출이 계속 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강기윤 한국은행 조사역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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