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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영방송 민영화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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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영방송 민영화의 함정

입력
2008.08.1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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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비효율성, 뒤떨어진 서비스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문제를 혁파하는 방법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강력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KBS2와 MBC 등 공영방송 민영화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그 안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설사 불순한 의도가 없다 쳐도 공영방송 민영화에는 당장 기대되는 ‘득’ 이상의 ‘실’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에서 겪은 민영화의 불편

2006년부터 1년간 미국 LA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남가주대학(USC)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다. 생활환경 및 아이들 교육 때문에 우리로 치면 안양쯤 되는 곳에 거처를 구했다. 하지만 서울 버금가는 교통혼잡이며 주차문제 등으로 통학하는 게 여간 심란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LA와 인근지역을 연결하는 민영 전철서비스를 발견하고는 말 그대로 만세를 외쳤다. 관 냄새가 풀풀 나는 1호선, 2호선 대신 오렌지라인, 리버사이드라인 같은 이름에 역시 민영은 다르다며 실없이 감탄도 하고, 무인시스템 역사도 좋게 느껴졌다.

그런데 감탄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비스가 말 그대로 엉망이었던 것이다. 안내 없이 열차가 10~20분 늦는 건 예사고, 아예 1시간 이상 연착되어 승차를 포기한 날도 여럿이다. 무인 역사 내 발권기가 작동 안돼 발을 동동 구르다 불안한 심정으로 무임승차한 적도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오히려 태연자약하였다. 이게 시장원리 아니냐는 것이다. 민영전철 서비스의 질은 결국 비용과 수입 계산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며, 극단적으로 안전설비나 인력 미비로 승객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나도 그 처리비용이 상시적 안전유지비용보다 싸게 먹히면 전자를 택하는 게 합리적이란 것이다.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시민복리보다 기업영리가 우선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1년간 지독한 불편을 겪으며 생생히 학습하였다.

필자의 경험담이 아니라도 공공산업 민영화의 폐해 사례는 무수하다. 그 중 하나가 2003년 뉴욕, 디트로이트, 토론토 등 북미 동부 주요 도시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대규모 정전사태다. 이 사태의 주 원인 중 하나로 수익을 앞세우는 민영 전력사업자가 노후화된 장비 등을 적기에 교체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런데 부정확한 열차 배차간격이나 정전사태보다 훨씬 심각한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게 방송의 파행이다. 전 국민의 삶을 싣고 달리는 열차, 온 국민의 마음을 밝혀주는 전등에 비유할 만한 게 방송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안전장치가 공영방송제도다. 이 장치에도 불구, 공영방송은 계속 아찔한 사고에 휘말려 왔다.

게다가 정글 속 생존다툼 같은 매체환경은 방송사업자들을 상업화의 길로 치닫게 내몰고 있다. 이래저래 종래의 안전장치가 염려스러운 판에 공영방송 민영화는 정연주, PD수첩, 노조방송, 편파방송, 반MB노선 등 이유가 무엇이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으로, 전국민을 싣고 질주하는 열차의 제동장치를 떼어내자는 말처럼 섬뜩하다.

이러다 방송마저 잃지 않을까

며칠 전 일이다. 집 주변 공원에 아이들 주말농구를 등록하러 갔다가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대신 과거 유명 여자국가대표선수의 농구교실이 신설된 것이다. 시간단위 요금도 3배 이상 뛰었다. 공적인 청소년생활체육 영역에 스타 마케팅을 앞세운 시장원리가 들어온 셈이다. 신설 프로그램은 중학생까지 받기 때문에 작은 아이는 그렇다 치고 초등생 때부터 주말이면 농구하며 땀 흘리는 걸 당연한 일과로 알던 고교생 큰 아이는 소중한 생활 일부를 잃게 되었다.

주변에서 자꾸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최근 감사원의 KBS특별감사 결과 등 방송계 소식을 접할 때마다 민영화물결에 방송마저 잃게 되진 않을지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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