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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老年] 75세 보험설계사 김유수씨 "환갑 넘어 최전성기…지금도 짱짱한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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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老年] 75세 보험설계사 김유수씨 "환갑 넘어 최전성기…지금도 짱짱한 현역"

입력
2008.08.1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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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씩씩하다'는 말은 더 이상 20, 30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식들에게 기댄 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대신, 여전히 현업에서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갖고 아름답고 씩씩한 노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스로의 삶을 멋지게 가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문구를 이 시대의 격언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주인공들을 매주 토요일 소개한다.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인다고요? 자신감과 열정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나이를 먹어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사회도 건강하게 만들지 않을까요."

조용하지만 던지는 말마다 자신감이 묻어나는 김유수(75ㆍ여)씨의 인생 철학이다. 말쑥한 양복 차림의 20~30대 남성 보험설계사가 대세인 요즘 할머니 보험설계사는 낯설다. 그러나 고희를 훌쩍 넘긴 김씨는 국내 대형 보험사에서 활동하는 '짱짱한 현역'이다.

김씨가 보험설계사가 된 것은 마흔에 접어든 1973년,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고 '보험 들어달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창피했다.

그러나 "남들과 같아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끝까지', '하루 최소 3명은 만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35년간 매일 이 원칙을 실천했다.

그 세대 일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김씨는 가정 안팎의 일을 도맡아야 했다. 아침 7시 무렵 출근하려면, 매일 새벽 4시30분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2남1녀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주말에도 바쁜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청소, 빨래 등 밀렸던 일을 하다 보면 토요일과 일요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김씨는 "어려서부터 엄마의 바쁜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두 아들과 막내 딸 모두 부지런한 습관이 나를 꼭 빼 닮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최전성기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였다. 당시에는 관리하는 고객이 5,000명을 넘었고 억대 연봉을 받았다. "군 병력으로 따지면 3개 연대 규모가 넘는 고객들을 꼼꼼히 분류하고 관리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아들, 손자까지 이어지는 '3대 고객'도 드물지 않았죠."

대한민국 전체가 휘청거렸던 1997년 외환위기도 이겨낸 김씨에게 정작 큰 위기는 2005년 찾아왔다.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는데 그만 허벅지 뼈가 부러진 것. "1년간 직장을 쉬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청천벽력이었죠."

김씨는 "고객 관리도 제대로 못할 바에는 그만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 놓았다. 재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그는 프로답게 은퇴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5,000여명 고객 파일을 넘겨주고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회사가 그를 놔주지 않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30여명 후배들에게 김씨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 당시 병실까지 찾아온 회사 고위관계자는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 힘이 된다"며 사표를 반려했다. 후배들도 조를 만들어 매일 찾아와 끈질기게 복귀를 부탁했다.

후배들의 성원과 스스로의 강한 재활 의지 덕에, 김씨는 2006년 현직 보험설계사로 복귀했다. 공백기 탓에 관리하는 고객은 400여명에 머물고 수입도 전성기의 3분의1 수준으로 줄었지만, 일흔 다섯 '왕 언니' 설계사는 같은 사무실 후배들의 영원한 우상이 됐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장에서 뛰기 위해 김씨가 가장 신경쓰는 것은 건강이다. 김씨는 "나의 건강법은 하루 1만보 걷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하철이나 버스 한 두 정거장 거리는 일부러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요즘도 오전 6시면 경기 용인 수지의 집을 나와 1시간 가량 지하철을 타고 서울 강남역 사무실로 출근하는 김씨는 "직장에서 필요로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일을 하다가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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