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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14> 뇌성마비 장애 딛고 세상과 소통 임연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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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14> 뇌성마비 장애 딛고 세상과 소통 임연흠씨

입력
2008.08.0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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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입술이 삐죽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꼭 그러쥔 오른손 엄지손가락 마디가 힘겹게 무선 키보드를 천천히 누른다. '임. 연. 흠.'

임씨는 뇌성마비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1급 장애인이다. 몸 뿐만 아니라 말도 할 수 없고 제대로 씹지 못해 딱딱한 음식은 언감생심이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른손. 그마저도 손가락을 펴지 못해 항상 오른손 엄지손가락 마디가 손가락을 대신한다.

올해 34세 여성인 임씨에겐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다. 그는 태어나서 34년을 좁은 단칸방에서 어머니 안경수(71)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누워서 살았다. 당연히 외출은 꿈도 못 꾸었다.

그런 임씨가 올해 5월 처음으로 세상과 만났다. LG전자의 자원봉사단 'LG 정보나래'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배워 장애인재활협회가 주관한 '장애인 정보화 제전'에 휠체어를 타고 출전한 것이다. 생애 첫 외출이었다. 그의 용기를 높이 산 협회는 특별상을 주었다.

임씨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사람은 LG전자 MC사업본부에서 휴대폰 개발을 맡고 있는 최학호(35) 선임 연구원. LG전자 직원들의 자원봉사 모임인 정보나래에서 2년째 활동 중인 그는 올해 3월 서울장애인재활협회 소개로 임씨를 만났다. 다행히 임씨에겐 가수 김동완, 쇼트트랙 김동성 선수 등이 모금해서 기증한 컴퓨터가 있었다.

하지만 1급 장애인에게 컴퓨터 교육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심한 장애 탓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임씨는 한글을 몰라서 필담도 힘들었다. 그때부터 최 연구원은 매주 일요일 자신의 집이 있는 안산에서 서울 용산2가의 임씨 집까지 찾아가 2시간 이상 컴퓨터와 한글 교육을 병행했다.

"아무리 단어를 가르쳐줘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몰랐어요. 평생 단칸방에만 누워 지내 해당 사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결국 그림 외우듯 글자를 외우더군요."

최 연구원은 서두르지 않았다. 임씨가 이해하고 따라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다. 점차 변화가 나타났다. 이제 임씨는 컴퓨터 화면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띄우기도 하고, MP3 파일로 좋아하는 가수 김동완의 노래도 듣는다. 컴퓨터 바탕 화면에 자신의 사진도 올려 놓았다. 싸이월드에 미니 홈피를 만들어 사이버 세상을 향한 창문도 열었다.

정상인에겐 간단한 일이겠지만, 항상 누워서 생활하는 임씨가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우스 한 번만 움직이면 될 일도 손가락이 펴지지 않다 보니 키보드의 단축 버튼을 여러 번 눌러서 진행했고, 컴퓨터는 오른손으로 움켜쥔 가느다란 쇠꼬챙이를 뻗어서 켜야 했다.

삶은 투쟁이라고 했던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임씨의 힘겨운 싸움을 도우며 최 연구원도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동안 세상을 편하게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씨의 눈물겨운 노력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점차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외동 딸을 지켜보는 안씨의 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에게 임씨는 특별한 딸이다. 34년 전 어느 날 느닷없이 들려온 아기 울음 소리를 듣고 집 밖에 나갔다가 누군가 버리고 간 아기를 발견했다. 임씨였다. 함께 아기를 거뒀던 남편은 지금 치매 때문에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가난과 병마는 두 모녀를 가혹하게 몰아 붙였다. 임씨에게 나오는 장애인 보조 수당과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를 위한 지원금을 합쳐 월 6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더욱이 허리 디스크를 앓는 노모는 일주일에 4일씩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요즘 디스크가 심해서 딸의 대ㆍ소변을 받아내기도 힘드네요. 딸 앞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와요."

작은 휠체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마저도 동사무소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거절했다. 임씨에겐 봉사단체에서 선물한 전동 휠체어가 한 대 있지만, 임씨와 노모가 다루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장애 진단서를 제출하면 작고 가벼운 것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노모는 어렵사리 서류를 갖춰 동사무소를 찾았다. 하지만 "1대 있으면 됐지 왜 그러느냐"며 되려 면박만 당했다. "하나 더 달라는 게 아니라 바꿔달라는 데도 안 된다고 하네요."

몸이 불편하다고 생각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임씨는 노모에게 한 번도 밝히지 않았지만, 힘들어 하는 노모를 보며 자살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최 연구원은 "임씨가 '약 먹고 죽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번 털어놓았지만, 컴퓨터와 친해지면서 성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날로 향상된 임씨의 컴퓨터 실력 만큼 두 모녀의 생각도 달라졌다. 예쁜 그림을 좋아하는 임씨는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 의상 디자인을 하는 게 꿈이다. 의상 디자이너가 돼서 목욕탕 있는 집과 '납작한'(LCD) TV를 노모에게 사주고 싶어한다.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난 뒤가 걱정스러워 "차라리 내 앞에서 편안히 먼저 가는 게 낫다"고까지 생각했던 노모는 이제 딸이 세상 사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최 연구원의 즐거운 고민은 늘었다. "아직 9~11월 교육이 남아 있는 만큼 임씨가 마우스 없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어요." 그의 고민이 해결되면 임씨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늘어날 것이다.

■ LG 정보나래 자원봉사단

LG전자는 2004년 서울장애인재활협회와 함께 'LG 정보나래 정보요원단'을 조직, 장애인들이 컴퓨터(PC) 등 디지털 기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무료 정보기술(IT)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보나래 구성원들은 대부분 컴퓨터 및 인터넷 활용에 익숙한 LG전자의 서울ㆍ경기 지역 연구원들이다.

LG 정보나래는 장애인들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각종 정보화 지원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1대 1 방문 PC 교육'. 자원봉사자가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 및 청소년들의 집을 찾아가 1대 1로 컴퓨터 및 인터넷 사용법을 알려준다.

교육은 주 1회 이상 방문을 원칙으로 3개월씩 1년에 두 차례(봄ㆍ가을) 진행된다. 자원봉사자들은 퇴근 후 저녁 때 방문하거나 휴일을 쪼개서 찾아가기도 한다. 심지어 두 시간 이상 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가정이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경우 휴일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없어, 식구들로부터 뜻하지 않은 원성을 듣기도 한다.

교육 내용은 이메일 주고 받기, 인터넷으로 각종 정보 찾기, 채팅 등 인터넷 사용법과 문서작성, 수치계산 프로그램, 파워포인트, 포토샵 등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 사용법이 주를 이룬다. 교육을 받아본 장애인들은 "컴퓨터를 활용한 각종 활동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세세하고 꼼꼼하게 가르쳐준다"고 입을 모은다.

자원봉사자들에 대해 회사가 특별한 보상을 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지원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04년 10월 1기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총 200명 이상이 정보나래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들의 자원봉사 경험담은 한결같다. "나눔을 통해 오히려 우리들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자기 만족이 없다면 주말을 포기할 리가 있나요?"

회사 경영진의 평가도 높다. 김영기 LG전자 지원부문장(부사장)은 "직원들이 좋은 일을 하면 기업 이미지도 개선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평가 받게 된다"며 "무엇보다 회사가 앞장서서 주도하는 타성적인 봉사 활동이 아닌 직원들의 자발적인 실천이기 때문에 진정한 봉사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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