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비키니 차림 여성들 틈에서 비치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아이스크림 상인과 댄스 음악을 틀어 놓은 DJ의 모습도 보인다. 아이들은 무리 지어 뛰어다닌다. 휴가철 해변 풍경으로 생각되지만 프랑스 파리 센 강변의 저녁 모습이다. 둔치에 임시 비치 의자를 설치, 해변 모습을 흉내낸 것이 물가 급등, 경기 침체로 쪼들린 프랑스인의 2008년 휴가 풍경이다.
유럽인의 여름 휴가가 예전 같지 않다. 8월 내내 가게 문을 닫고 썰물처럼 도시를 빠져나가 유령이 나올 것 같던 분위기가 올해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AP통신이 7일 전했다. 상반기 경제성장은 제자리였지만 물가가 목표치를 훨씬 웃돌자 휴가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 가까운 휴양지에 잠시 들러 휴가 기분만 내거나 아예 집에 머무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프랑스의 회계사 마르크 데부이용(43)은 "8월에는 일하고 물가가 떨어지는 오프시즌에 쉴 계획"이라며 "얇아진 지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 관광업계와 요식업계가 지난 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호텔 내 객실 점유율은 줄지 않았지만 음식점이나 카페 매출은 예년에 비해 20~30% 정도 떨어졌다. 최근 나온 다른 조사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42%가 여름 휴가를 집에서 보낼 것이라고 응답했다. 2005년에 비해 10% 포인트나 높아졌는데 장기 휴가 관행이 확실하게 퇴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치솟는 음식값과 교통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돈을 펑펑 써가며 해외에서 장기 휴가를 보내던 관행에 변화가 오는 것은 프랑스 이외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타임스 조사에서 영국인의 58%는 주머니 사정으로 휴가 계획을 변경할 것이라고 답했다. 19%는 휴가 계획을 완전 취소했고 34%는 외국 대신 비용이 적게 드는 영국 내로 행선지를 바꿨다. 여행사 호시즌 대표 리차드 캐릭은 "비용을 줄이려고 가족 단위로 여행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스페인 여행사들은 고가의 평판 TV를 경품으로 내걸고 여행자를 끌어들이려 하지만 이마저 신통치 않다. 이탈리아에서도 멀리 휴가를 가는 대신 시원한 아이스크림 등을 먹으며 집에서 머무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는 유럽인은 달러 약세를 틈타 미국에서 휴가를 보낸다.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달 물가가 급등한 유럽이나 아시아 대신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이 50%나 증가했다. 항공료는 비싸지만 물건 값이 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비용이 덜 든다는 이유였다. 거꾸로 북미에서 유럽을 찾는 관광객은 크게 줄고 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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