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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둘기·길양이… '떼'들의 도시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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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둘기·길양이… '떼'들의 도시 습격

입력
2008.08.08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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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기들이 이 도시의 주인이라고 과시하는 것 같았어요."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사는 유모(29ㆍ여)씨는 최근 귀갓길에 떠돌이 고양이 떼와 마주쳤다.

15마리 정도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둘러싸고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유씨는 "사람이 지나가는데도 도망가기는커녕 떡 하니 쳐다보는 눈빛에 공포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도시가 야생 동물들의 습격에 떨고 있다. 고양이, 비둘기 같은 짐승에서 매미, 말벌 등 곤충에 이르기까지 습격의 행렬은 끝이 없다.

■ 도시의 무법자 '닭둘기' '길양이'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는 도시의 흉물이 된 지 오래다. 공원뿐 아니라 주택가, 시장, 대학 캠퍼스 등 도시 구석구석을 떼로 몰려다니며 닥치는 대로 음식물을 쪼아먹고 배설물을 쏟아내면서 '닭둘기'(비행 본능을 잃고 피둥피둥 살만 찐 비둘기)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서울 중구 신당2동 중앙시장 곡물가게 상인들은 오전 7시, 정오, 오후 4~5시 등 하루 세 차례 식사를 챙겨먹으러 오는 비둘기 떼를 쫓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조의자(66ㆍ여)씨는 "가게 안까지 들어와 살포대를 쪼아대는가 하면, 쌀포대에 배설물이 들어가 손님들이 항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모(17)군은 "바로 윗집인 13층 에어컨 실외기에 2년 전부터 둥지를 튼 비둘기가 시도 때도 없이 '구구구구' 울어대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주택가를 휩쓸고 다니는 '길양이'(길거리를 배회하는 야생 고양이)들은 골칫거리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 됐다.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에 사는 박정호(31)씨는 "출근길에 고양이들이 찢어놓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여기저기 뒹구는 걸 보는 것도 짜증 나지만 아기 울음소리를 닮은 발정음을 들으면 몸이 오싹 해진다"고 말했다.

'길양이 괴담'의 원천은 급증하는 애완동물 유기와 고양이 자체의 왕성한 번식력. 유기된 동물 수는 서울에서만 1997년 1,035마리에서 2007년 1만5,373마리로 10년 새 15배 가량 늘었는데, 특히 고양이는 2005년 2,822마리, 2006년 4,599마리, 2007년 5,309마리로 급증했다.

게다가 고양이는 임신기간이 2개월로 짧고 한 번에 2~4마리씩 1년에 최대 4번까지 임신이 가능하다. 암컷 1마리에 연간 최대 16마리까지 낳을 수 있는 것이다.

■ 곤충들의 전방위 공격

최근 들어 매미 울음소리도 달라졌다. '맴~맴~맴'이 아니라 '매에에에에에~'하고 울어댄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도시의 우점종으로 등극한 말매미가 주범이다. 국내 20여종의 매미 가운데 가장 번식력이 왕성한 말매미는 70dB(지하철 소음 85dB)을 넘나드는 떼울음으로 도시인의 귀를 괴롭힌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조모(33)씨는 "직장이 멀어 늦게 집에 오고 일찍 나가야 하는데 밤낮없는 매미 울음소리에 잠을 편히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주홍날개 꽃매미까지 날아들어 나뭇가지를 말라죽게 하는 등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이승환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 흔한 가죽나무를 특히 좋아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벌떼의 공격도 두려움이 대상이다. 서울시 소방본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벌떼 공격으로 119구조대가 출동한 건수는 모두 7,573건으로, 2003년 580건이던 것이 2007년 2,846건으로 5배 가량 늘었다.

올해만도 119구조대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사람이 275명에 달한다. 지난달 29일에도 서울 금천구 시흥동 빌라 옥상에서 말벌떼가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다.

▲ 비둘기

* 높은 번식력과 강한 적응력으로 도심 환경에 완전 적응

* 배설물로 미관 및 도시시설 훼손, 곡물 및 음식가게에 피해

▲ 길거리 고양이

* 버려진 고양이 증가(서울 2005년 2,822마리 → 2007년 4,599 마리)과 높은 출산력(암컷 1마리당 연간 최대 16마리)으로 개체 수 급증

* 음식물 쓰레기 훼손 및 아기 울음소리 닮은 심야 소음

▲ 말매미

* 몸 45㎜ㆍ날개 65㎜로 생태환경 변화로 개체 수 급증

* 도심 아파트 주변 나무에서 70㏈이 넘는 소음 피해

▲ 주홍날개 꽃매미

* 중국 남부지역이 원산지이나 지구 온난화로 한국 풍토에 적응

* 나무즙액 빨아 먹는 습성으로 도시 가로수 고사의 주범

■ 고양이·비둘기 등 유해동물 해당 안돼 / '포획 후 제거'는 불법

야생의 습격에 대한 도시인의 대응은 제한적이다. 현행법상 고양이, 매미, 비둘기 모두 유해(有害)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대처법인 '포획 후 제거'가 불법인 것이다.

이에 따라 고양이와 비둘기를 쫓아내거나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다양한 전술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를 주업무로 하는 전문회사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둘기를 물리치려면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귀소 본능이 워낙 강해 한 번 쫓겨나도 6개월 동안 진입을 시도한다. 원래 집이 있던 자리에 뾰족한 송곳을 촘촘히 박아 두는 방법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천적인 매처럼 생긴 풍선을 매달아 두거나 끈끈이를 사용하기도 한다. 끈끈이에 걸려 가까스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털이 뽑히는 경험을 한 비둘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매년 비둘기 피해가 커지면서 퇴치 전문업체 매출도 그만큼 늘고 있다. 비둘기 전문퇴치 업체 미츠의 김종규 대표는 "비둘기를 쫓아달라는 고객 주문이 2004년 이후 매년 두 배 가량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전문 포획인을 고용해 포획한 뒤 거세수술을 한 뒤 풀어주는 경우도 있으나, 워낙 수술비용이 많이 들어 전면적으로 실시되지는 못하고 있다.

말매미와의 전쟁도 쉽지 않다. 말매미도 전염병을 옮기거나 식물을 고사 시키는 해충이 아니기 때문에 살충제를 뿌려 방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미 때문에 못 살겠다'는 주민들의 호소를 접한 서울 서초구가 최근 대대적인 방역을 준비했다가 시행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주홍날개 꽃매미는 유해곤충으로 분류돼 살처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워낙 개체수가 많아 완전 퇴치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 서대문구가 지난 4월부터 살충제를 사용해 주홍날개 꽃매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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