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을 무대로 진행 중인 일련의 당혹스런 사건들을 접하자니, 혹 예전엔 존재하지 않던 “사이버 인성(personality)”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밀려온다.
주 초(初)엔 ‘시위 여대생 사망설’ 의혹 광고를 게재하고자 ‘촛불 모금’을 시도한 대학생이 모금액 일부를 나이트클럽 및 안마시술소 결제 등 개인적 용도로 전용했다는 기사가 등장하더니, 뒤를 이어 조계사를 방문한 초등학생들이 대통령을 향해 원색적 욕설을 방명록에 적는 장면을 동영상에 담아 유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질적 차이가 큰 온ㆍ오프라인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시연(試演)의 세계와 오프라인에 발 딛고 있는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도 논의가 분분하다. 초기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엔 유기적 관계가 존재하는 만큼, 온라인은 오프라인 현실의 촉진제(facilitate)적 성격이 강하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곧 오프라인이 성숙한 시민사회라면 온라인 세계도 이를 충실히 반영할 것이요, 거꾸로 미숙한 난장판이라면 온라인 또한 예외 없이 그를 투영하리란 것이었다.
한데 최근 들어선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는 분명 어느 정도의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가면서, 시공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온라인만의 특성으로부터 파생되는 발현적(emergent) 속성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익히 알려진 바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양식은 익명성이 보장될수록 보다 솔직하게 개인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는 자기고백체가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튀고 싶은 욕망’이 개인의 검열이나 집단의 견제 없이 분출되는 장임이 확인되고 있다. 덕분인가, 온라인 상에서 치명적 ‘악플’을 일삼는 사람들을 추적해본 결과 외견 상 극히 평범해 보이는 회사원이나 모범생에 가까운 중ㆍ고등학생들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오프라인 및 온라인에서의 연결망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현실 세계에서는 대체로 2.5인 정도만 거치면 서로 링크되기 마련이나, 온라인에서의 거리는 현실에 비해 오히려 2배 가량 더 소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 검색 못지않게 온라인 상에서의 커뮤니티 활동에 몰입하는 우리네 특수성을 고려해볼 때, 사이버 공간에서의 거리감이 현실세계보다 더욱 크다는 사실은 일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사이버 공간 속에 ‘또 다른 나’를 만드는 ‘아바타’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와 인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다. 이는 기존 문화의 성격이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케 하는 동시에, ‘또 다른 나’의 욕구가 유달리 강한 우리의 경우 사이버 인성이 보다 선명하게 자리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하겠다.
다학문 연계 통한 분석 필요
혹여 사이버 공간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사이버 인성이 존재한다면, 그 실체는 무엇이며 현실세계 속 인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사이버 인성은 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양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가, 사이버 인성이 표출되는 경우 그건 주로 긍정적 면인가 아니면 부정적 면인가 등등에 대한 답이 명쾌하게 구해져야 할 것이다. 이들 물음에 대한 답은 가능하다면 다학문 간 연계 및 활발한 소통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그렇게 할 때만이 사이버 세계에 덧씌워진 바, 극단적 언어폭력과 저질 욕설이 난무하는 무질서한 공간, 도덕적 절제 및 규범적 통제의 끈을 놓아버리는 무책임한 공간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리고, 사이버 세계의 자기정화 기능을 작동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덧붙여 사이버 인성의 성숙이 오히려 오프라인 세계의 민주적 관계를 촉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찾아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게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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