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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기는 정치, 지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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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기는 정치, 지는 정치

입력
2008.08.06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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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채널을 돌리다 호날두가 나오면 손을 멈춘다. 루니나 박지성도 나오면 아예 리모컨을 멀리 던져놓는다. 잘 생긴 얼굴, 현란한 드리블, 꼭 필요할 때 골을 넣는 킬러 본능. 그들이 서면 맨채스터유나이티드는 마치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어느 팀에게도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길 것 같다는 느낌…그것처럼 매혹적이며 유효한 상징은 없다. 선동렬 삼성감독이 선수 시절 그랬다. 주자 만루의 위기를 맞아도 선동렬이 등판하면 관중은 기대하고 타자는 주눅이 든다. 그 기대와 주눅이 삼진아웃과 게임종료로 어김없이 이어졌다.

정치도 그렇다. 잘 할 것 같다는 느낌,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도자를 향한 대중의 심리가 이렇다면 일의 절반은 이룬 셈이다.

이길 것 같은 이미지를 가장 적절하게 활용한 지도자 중 한 명이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그가 진지한 지도자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국민이 원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알고 그 이미지를 주는데 탁월했다. 레이건은 집권하자마자 전임 대통령인 카터의 검소한 생활과는 달리 연일 화려한 만찬을 주재했다. 카터는 도덕적이었지만 이란에서 미 대사관 직원들이 인질로 잡히고 구출 작전이 실패하는 등 대외적으로는 ‘약한’ 대통령이었다.

당시 미국은 추락의 위기의식 속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레이건은 강한 미국을 외치고 등장했고 만찬조차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그가 백악관 회의에서 종종 졸고 헐리우드 배우시절의 얘기로 시간의 절반을 썼지만 소련과의 경쟁, 항공파업 등 대내외적으로 중대한 국면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뚝심과 일관성을 보여줬다.

그런 이미지는 이명박 대통령도 갖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잘 할 것 같다는 기대감 그 자체였다. 샐러리맨 신화, 청계천 복원은 민초들의 팍팍한 삶을 일거에 시원하게 뚫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줬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지치고 왜소하고 질 것 같다는 느낌마저 준다. 며칠 전 만난 한 청와대 수석은 “MB는 결코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다. 기다려보라”고 했지만 그를 향한 국민정서는 우울하다. 이래서는 개혁도, 경제회생도, 선진화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길은 복잡하지 않다. 이길 수 있다는 느낌을 다시 주면 된다. 물론 한 번 무너진 이미지는 쉽게 복원되기 힘들다. 그래서 이기는 게임에 주력하라고 권하고 싶다. 질 게임에 전력을 다하면 임기 내내 허덕거리게 될 것이다.

이기는 게임은 무엇인가. 그것이 요체다. 정당성, 타당성, 효율성이 있는 일로 국민이 이것만큼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원하는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공기업 개혁이나 법 질서 확립도 그런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기성찰이나 희생, 정당한 절차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이기는 게임이 된다.

하물며 회전문 인사라든지, 언론장악 시도, 사상자유 침해 논란을 야기하는 조치들이 너절하게 전개되면 아무리 명분있는 개혁을 추진해도 지는 게임으로 둔갑할 것이다. 누군가 귓속말로 속삭일 것이다. 밀리면 진다고. 그러나 이기는 정치는 국민을 제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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