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ㆍ11 테러 직후 미국과 세계에 ‘백색가루 공포’를 안긴 탄저균 테러범이 자살했다고 한다. 미 FBI, 연방수사국이 범인으로 지목한 브루스 아이빈스는 육군 생화학무기 연구소의 실험실 책임자로, 1년 전부터 수사망이 죄어오자 지난달 29일 음독 자살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그를 살인혐의로 기소할 계획이었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기소도 하지 않은 유력한 용의자가 죽었으니 엄밀히 따져 사건은 미해결로 남은 셈이다. 수사가 7년이나 끈 것이나 ‘범인’이 자살한 결말 등이 모두 석연치 않다.
■2001년 10월 탄저균 테러에 관해 쓴 ‘지평선’과 ‘월드 워치’ 칼럼을 찾아보았다. 영국의 권위지 더 인디펜던트 등 외부언론의 객관적 보도를 인용해 쓴 글이다. 부시 대통령과 미국 언론은 탄저균 테러를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소행으로 단정하지만, 근거 없이 미신을 조장하는 ‘혹세무민’일 뿐이라는 내용이다. FBI는 테러에 이용된 탄저균이 미국 실험실에서만 배양하는 에이메스(Ames) 변종임을 확인, 국내 극우세력의 범행 쪽으로 수사한다고 덧붙였다. 또 탄저균 우편물 협박은 미국에서 한 해 80여건 씩 발생하는 고질적 병리 현상이라는 FBI의 설명도 소개했다.
■이미 그때 인디펜던트 지는 육군 생화학무기 연구소를 탄저균 출처로 지목한 것으로 기억한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악마성을 부각시키려는 ‘음모’를 의심하는 듯했다. 우리 언론이 알 카에다 범행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잘못을 칼럼에서 지적했지만 음모설을 전할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든 객관적 언론은 애초 사건의 본질을 상당히 정확하게 짚은 셈이다. 이에 비해 우리 언론이 탄저균 출처를 이라크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으로 종잡을 수 없이 몰고 간 보도를 추종한 것은 새삼 개탄할 일이다.
■객관적 시각으로 보면 FBI의 수사 결론도 허술한 점이 두드러진다. FBI는 오랜 노력 끝에 지난해 탄저균의 DNA 지문 감식법을 개발, 범행에 쓴 탄저균이 아이빈스의 실험실 탄저균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범행을 입증할 수는 없다. 그가 메릴랜드 주의 연구소에서 차로 왕복 7시간 거리인 뉴저지 주까지 가서 탄저균 우편물을 발송한 행적 등도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우편물 발송지가 9ㆍ11 테러범이 살던 곳이라는 점을 알 카에다 범행설의 주된 근거로 삼은 것을 상기하면, 사건의 진상에 관한 의혹은 더욱 커진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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