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은 지난해부터 클래식과 미술, 오페라 등 문화 강좌를 하는 세종예술아카데미를 마련해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곳에서 마련한 한 프로그램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르 그랑 뚜르’라는 이름의 여행 프로그램으로, 22일부터 8박9일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8개 도시를 둘러보는 상품이다.
바티칸, 두오모 성당,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등을 견학하고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아이다> 를 관람하는 이 상품의 가격은 무려 645만원. 원래는 900만원으로 책정했었는데 그나마 ‘국민 정서’를 고려해 최대한 가격을 낮춘 것이라는 설명이다. 17명 모집에 현재까지 10명이 신청했다. 아이다>
세종예술아카데미는 르 그랑 뚜르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7~19세기 유럽의 상류층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며 선진 문화예술을 습득했다. 태생적 신분을 넘어 내적으로도 진정한 ‘귀족 거듭나기’를 위한 르 그랑 뚜르가 그들만의 통과의례로 성행했다.”
다양한 취향의 문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가격이 비싸다 해서 무조건 삐딱한 시선으로 볼 일은 아니다. 가격에 합당한 좋은 프로그램이라면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여행사를 비롯해 민간 공연기획사도 비슷한 성격의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가 주관하는 일본 벳푸 음악 페스티벌 여행상품, 크루즈를 타고 빈 필의 연주를 감상하는 상품도 나왔다.
하지만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공공기관인 세종문화회관이 8박9일에 645만원짜리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과연 공공성에 합당한 것인가. ‘그들만의 문화’에 대한 위화감만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이 프로그램 담당자는 “아카데미에는 대상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르 그랑 뚜르는 사회 지도층이나 CEO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일반인들은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대상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다.
세종문화회관은 9월에는 ‘한반도 선진화를 위한 오피니언 리더 그룹의 최고위 과정’이라는 서울문화아카데미도 개강한다고 한다. 차기 지도자 그룹 양성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도대체 645만원짜리 여행상품, 요즘 돈만 되면 아무곳에나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그 흔한 ‘최고위 과정’ 또 하나 만드는 것이 서울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이라는 세종문화회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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