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파동과 독도 파문이 많이 잦아들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이나 권철현 주일 대사의 귀임이 그런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반대 시위도 있었지만 다수 국민의 마음에 외침이 가 닿지는 못했다. 많은 국민이 공감할 시위가 예상됐다면 부시 대통령의 방한 자체가 불발했을 것이다. 촛불집회로 번져 온 나라를 달구었던 쇠고기 파동이 이제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추진력을 잃었음을 보여준다.
다양성이 생명력의 근거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용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함으로써 빚어진 독도 파문의 충격도 쇠고기 파동 못지않았다. 더욱이 미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주권 미확정’ 지역으로 표현을 바꾸었다가 부시 대통령이 나서서 제자리로 되돌리기까지 반일 감정과 반미 감정의 상승작용도 일어났다.
그나마 쇠고기 파동은 얻은 게 있었다. 정부의 엉성했던 쇠고기 협상의 실체가 확인돼 치밀한 외교의 필요성을 일깨운 데다 추가협상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실질적 안전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를 많이 덧붙였다. 이와 달리 독도 파문은 도대체 무엇을 얻어 파문이 잠잠해진 것인지를 알 수 없다. 미국 BGN이 ‘주권 미확정’ 지역에서 ‘한국’ ‘공해’라는 원래의 표현으로 되돌렸다고 해서 독도에 대한 미국의 전통적 중립 자세의 변화라고 할 수 없고, 일본 정부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쇠고기 파동은 본질적으로 ‘국내 문제’이고, 독도 파문은 ‘국제 문제’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오류를 범한 정부를 비난하고 협상결과의 시정을 촉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시적 성과를 끌어낼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국민적 요구에 응하지 않을 정부란 없다.
반면 일본의 태도를 비난하고, 시정을 촉구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 성과를 얻어내기는 어렵다. 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어떤 한 가지 문제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기 어려울 정도로 다방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외교적 해결’이 때로 아무런 문제 해결 없는 현상의 확인ㆍ유지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는 현재의 상태도 일종의 ‘외교적 해결’인지 모른다.
한편으로 두 문제는 국민의식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는 ‘획일화’ 정도에서도 크게 다르다. 쇠고기 파동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과장하거나 과신하는 사람들이 주도했지만, 처음부터 이런 자세에 강한 의문과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 두 태도 사이에 어느 한 쪽으로 갖다 붙이기 어려운 넓은 중간지대도 있었다. 이런 다양성이 살아 있고, 그것을 수용하는 형태로 이뤄진 촛불집회는 생명력을 가질 만했다. 그러나 추가협상 이후 촛불집회가 과격시위의 사전 단계로 고착돼 ‘중간지대’가 크게 위축되자 다수에게는 무의미한 극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독도 파문은 처음부터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문제를 무시하려는 전문가는 있었다. 그러나 반일 감정의 분출을 정면으로 제지하거나 ‘중간지대’에 머물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획일성이 과거 같으면 국민적 에너지를 용솟음치게 했겠지만, 이제는 지속력의 한계만 드러낸다. 아직은 낯설지만 포스트모던 시대 특유의 ‘획일화의 역설’인 셈이다.
이제 설 자리 없는 극단론
중학교 미술시간에 처음으로 명도를 배웠다. 검은색과 흰색이 각각 명도 0, 10이고 그 사이에 9단계의 회색이 있었다. 회색이 얼마나 폭이 넓고 깊은지를 그때 실감했다. 더욱이 유채색과 함께 이뤄진 현실세계는 색상과 채도라는 다른 기준과 함께 명도를 나타내야만 실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니 개명천지에 천연색을 흑백으로 보는 것만도 한심한데, 검정과 흰색 사이의 그 많은 회색을 다 버리고 극단을 취하려는 논리가 통할 리 없다. 그런 교훈이라도 얻었다면 다행이겠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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