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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베이징 올림픽을 어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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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베이징 올림픽을 어찌 볼까

입력
2008.08.05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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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영국에 있을 때다. 올림픽 준비 상황을 취재한 기사가 권위지 더 타임스 한 면을 채웠다. 한 장뿐인 큼직한 사진부터 이상했다. 주경기장 앞에 부동자세로 서있는 의장대 경찰관을 클로즈업, 배경의 경기장 모습은 멀찍이 흐릿했다. “테러와 시위 위협 때문에 무장군인이 삼엄하게 지킨다”는 설명이었다.

어리석은 ‘중국 음해’ 추종

서울 곳곳을 소개한 기사는 악의적이었다. 달동네 등 어두운 구석만 살피고 있었다. 런던과 달리 시내 도로가 온통 험한 고개와 꼬불꼬불한 길이어서 짜증스럽다고 쓴 것에는 부아가 치밀었다. 길잡이 노릇한 국내 스포츠신문 기자가 한심스러울 정도였다.

기사에 열 받은 동포가 많았다. 며칠 뒤 우리 대사관의 항의편지가 조그맣게 실렸다. 한국의 격렬한 시위와 테러 뉴스에 익숙한 영국인들이 얼마나 눈 여겨 보았을까. 올림픽 개막에 맞춰 서둘러 귀국하자마자 권투판정 시비와 서구 언론의 음해 논란이 불거졌다. 나도 그들과 ‘언론 전쟁’을 치렀다.

베이징 올림픽이 8일 개막한다. 영국을 비롯한 국제언론은 대기오염 등 오랜 이슈를 재조명하는 한편, 인터넷 접근통제 등 새로 부각된 문제를 떠들썩하게 논란하고 있다. 공산당 통치와 인권상황, 빈부격차 등 체제를 새삼 비판한 기사와 논평도 많다. 서울 올림픽 때의 낡은 기억을 떠올린 이유다.

자세히 읽으면 상투적 편견으로 균형을 잃은 글이 태반이다. 대기오염과 교통정체를 막기위한 차량통제와 공장폐쇄를 시비하고, 베이징의 물 부족에 대비해 다른 지역 공급을 줄인 것을 비난한다. 독재체제나 할 짓이란 논리다. ‘그린 올림픽(Green Olympic)’을 위해 10년 가까이 150억 달러를 투자하며 애쓴 사실은 외면한 채 허물만 찾는 모습이 더러 역겹다.

노숙자들을 베이징 밖으로 내몬 것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선수촌 등의 인터넷 접근통제를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중국 정부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비판적 NGO와 미국의 반공 선전매체 ‘Radio Free Asia’ 사이트까지 개방했으나, 해외 반중 인권단체와 불법종교단체 파룬공 및 티베트 망명정부 등의 인터넷 사이트는 차단했다.

중국이 불법화한 반체제조직의 선전 사이트를 굳이 개방하라는 것이 올림픽 취재 자유와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다. 올림픽을 빌미로 체제 이념과 관리장치를 강파르게 시비하는 것은 이념적 편견에 치우친 음해로 비친다.

개인적 소신에 이끌려 중국을 편들려는 게 아니다. 서구 언론의 선정적 보도에 묻힌 듯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의 ‘역사적 의미’를 진지하게 천착한 서구 사회의 이성적 진단에 주목하기를 바라서다. 유난히 주변국에 쌓인 감정이 많은 우리사회가 흔히 맹목적으로 중국 음해를 추종하는 것이 안타깝다.

서구의 열린 지성과 논객, 정치가들은 일찍부터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질서의 대변혁을 상징한다고 규정한다. 독일이 패전을 딛고 일어선 1972년 뮌헨 올림픽과, 한국이 역사의 질곡을 벗어나 우뚝 선 서울 올림픽에 비길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는 평가다. 1839년 아편전쟁 이래 제국주의 침탈과 굴욕과 혼란을 겪은 지 150년 만에 세계 중심에 복귀했음을 자랑스레 선언하는 세기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21세기 국가전략 고민해야

이게 과장된 수사일까. 세계 중심국가에 걸맞게 민주와 자유의 이상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것을 마냥 비난해야 할까. 저마다 지닌 가치관과 지식에 따라 답은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각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은 새겨 들을

만하다. 미국과 함께 21세기를 이끌 중국과 더불어 평화와 번영을 이룰 국가전략을 열심히 모색하라는 충고는 더욱 그렇다.

이런 때 우리사회는 안팎으로 적을 찾아 과장된 언변과 몸짓으로 사생결단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역사의 고비마다 지혜로운 대응에 실패한 과거를 되풀이할 듯한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헛된 기우로 그치면 다행이지만, 우리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한심하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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