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심정은 항상 비난받아야 마땅한가. 지난 주 종영한 KBS 2TV <태양의 여자> 는 누구의 가슴 깊은 곳에서도 솟아날 수 있는 악인의 캐릭터에 대한 논란을 끄집어낸 드라마다. 태양의>
어린 시절 입양된 후 부모의 사랑 없이 자라던 도영(김지수). 우연히 부모의 친딸인 어린 지영(이후 '사월'ㆍ이하나)의 손을 서울역의 인파 속에서 놓아버리면서 20여년 이어진 '한의 드라마'를 시작했던 여인 도영.
영화 <여자, 정혜> <가을로> 등에서 꾸준히 차분하고 선한 여성을 표현했던 김지수는 <태양의 여자> 에서 복합적인 악인,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도영 역으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4일 오후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상처를 간직한 캐릭터에 끌렸었다"며 말을 시작했다. 태양의> 가을로> 여자,>
"만약에 도영이 단순한 악역이었다면 그 역할을 맡지 않았을 거예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도영에 끌렸죠. 단순히 나쁘기만 한 캐릭터는 없는 세상이잖아요. 사실 늘 착하기만 한 캐릭터는 매력없죠. 권선징악을 표현한 드라마라면 승산도 없잖아요. 그 이상의 작품이라 생각해 선택했어요."
극중 도영은 동생을 버렸다는 잘못을 묻어두고 최고의 아나운서, 대한민국 홍보대사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동생에 맞섰지만, 많은 시청자는 그녀에게 마냥 눈을 흘길 수는 없었다.
"도영이 왜 죄를 지어야 했는지, 그리고 죄의 기저에 담긴 슬픈 욕망을 표현하려고 했죠. 극본도 계속 도영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집중했고요. 도영의 악인 캐릭터보다 그녀에게 상처를 준 원인과 그 아픔에 매달려 연기를 했어요."
칼집에 검광을 숨기듯, 욕망과 분노를 평범한 표정 아래 감추고 악에 받친 말을 쏟아내던 김지수의 연기에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표정 연기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시는데, 제가 사실 배우생활을 시작한 후 한 번도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하거나 연기를 한 적이 없어요. 캐릭터에 더욱 몰입하기 위해서죠. 도영의 아픔을 함께 느끼려 했고 그런 진실이 전달됐다 생각해요. 정직하지 않은 연기를 하면 시청자들이 다 알아요."
극중 어떤 대사와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닥쳐, 네 목을 부러뜨리기 전에' 등의 대사를 말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답은 의외였다.
"가짜 지영인 현주를 좌지우지하는 장면이나, 사월과 연극 연기를 하는 장면 등이 굉장히 임팩트가 있고 악마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억에 남죠. 하지만 개인적으론 서정적인 말과 장면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아요.
도영이 자살을 시도하고 어린 도영이 일기 쓰는 장면, 잣죽을 먹는 장면들이요. 엄마가 있는 집의 따뜻함을 알게 됐다는 대사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배우에게 캐릭터는 항상 넘기 힘든 산맥이다. 일반인으로 쌓아온 도덕적인 잣대가 캐릭터와 부딪쳤을 땐 고민도 생긴다.
"도영이가 왜 이렇게 끝이 보이는 길을 갈까. 그런 것에 대한 답답함이 짓눌러올 때가 있었죠. 마지막까지 애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 걸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인간이라면 자신의 가장 큰 치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욕구가 있잖아요. 이렇듯 저의 잣대로 캐릭터를 평가하고 그러는 게 아직 있는 것 같아요. 열린 마음으로 캐릭터를 받아들여야 하는데요."
김지수는 복잡한 악역을 연기해 낸 <태양의 여자> 가 배역의 폭을 넓혀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말한다. 태양의>
"도전이었죠. 제 연기인생의 지울 수 없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상처가 있는 인물을 연기하길 좋아해요. 영화나 드라마 모두요. 상처에 관심이 많다고 할까요. 캐릭터의 상처를 통해 인생공부를 하게 된 것도 있고요. 도영을 좋아한 게 그녀의 상처가 깊고 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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