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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풀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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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풀잎

입력
2008.08.05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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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민음사

강은교(63)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를 처음 읽은 것은 1970년대 중반 소설가 최인호(63)의 <우리들의 시대> 라는 장편소설에서였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라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지금도 그립다, <우리들의 시대> 의 주인공들, 까까머리 고교생들의 좌충우돌 학창시절. 소심한 ‘개똥철학자’ 동순, 동순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던 이쁘고 착한 여학생 승혜 등등. 책 표지에 박혀 있던 ‘기다려라, 우리들의 시대가 온다’는 문구도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가 물이 되어’는 아마 동순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 최인호가 인용한 시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하는 저 아름다운 시구 때문에 그 시가 실린 강은교의 시집 <풀잎> 도 구해 봤었다. 최인호는 자신의 소설 곳곳에 시를 많이 인용했다.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나 ‘무서운 복수(複數)’ 등도 그의 소설에서 읽었던 기억이다. 최인호가 <상도> 를 한국일보에 연재하던 2000년 무렵인가 그에게 <우리들의 시대>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그 소설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달 <머저리 클럽> 이라는 최인호의 소설이 새로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절판됐던 <우리들의 시대> 를 새롭게 낸 책이었다. 잃어버렸던 학창시절의 흑백사진을 다시 찾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는 강물로 만나고 싶었던 그 시절의 꿈이 새삼 그리워진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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