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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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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매미

입력
2008.08.05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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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 25년이 넘은 아파트로 올 봄에 이사를 온 후 느끼게 된 가장 큰 변화가 매미다. 아파트 전체가 매미 울음소리에 묻힐 정도로 매미가 많다. 밤새 아파트 보안등이 켜져 있어서인지 밤에도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단지 안의 나무마다 매미가 붙어 있고, 한 그루에 열댓 마리가 붙은 나무도 있다.

아이들 손이 닿을 낮은 곳에 자리를 잡은 놈들도 많아 매미채 없이 맨손으로 금세 네댓 마리를 잡는다. 한동안 매미채로 순식간에 수십 마리를 잡고 으쓱하던 아이들도 이젠 시들해져서 가까이서 매미가 울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래 된 아파트 단지가 다 매미 풍년이다. 매미의 일생을 생각하면 이유가 짐작이 간다. 매미가 나무껍질에 낳은 알은 3~10개월 뒤 부화한다. 애벌레는 나무 아래 땅으로 들어가 오랜 굼벵이 세월을 보낸다. 종류마다 그 기간이 다른데 흔히 보는 참매미나 말매미는 5~8년이다. 매미는 멀리 날아갈 수 없다 보니 태어난 곳 주변에 번식이 집중된다. 더러 먼 곳까지 날아가더라도 6~9년은 지나야 그 새끼가 날개를 달 수 있다. 땅을 갈아엎고 콘크리트로 덮은 새 아파트라면 15년은 지나야 경쟁적으로 울어대는 매미 떼의 출현이 가능하다.

■매미 때문에 밤잠을 자주 설친다. 밤낮없는 울음소리 때문이 아니다. 산골 고향에서도 보지 못한 우화 과정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네 번 허물을 벗은 굼벵이는 까칠하고 날카로운 발과 눈을 갖춘 종령(種齡) 상태로 땅 위로 기어 나온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껍질에 단단히 발을 박은 후 등을 찢고 느릿하게 몸을 뒤로 젖힌 채 껍질에서 빠져 나온다. 몸이 거의 빠져 나왔다 싶으면 몸을 앞으로 숙여 앞발로 껍질을 잡고는 꼬리와 날개를 빼낸다. 연하게 접혀 있던 하얀 날개는 서서히 펼쳐져 밤바람에 마르며 단단해진다.

■껍질을 찢을 때부터 날개가 완전히 굳어 날아오를 때까지의 대여섯 시간 동안 갓난 매미는 느릿하게 길 수 있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 천적인 새들이 잠든 밤에 날개를 피울 수밖에 없다. 어둠 속에 여기저기 하얗게 붙어 날개를 말리는 모습이 밤에 피는 꽃 같다. 나무에 기어오를 여유도 없어 맥문동 꽃대에 매달려 허물을 벗는 놈도 숱하다. 더러 나무를 타고 오르다가 뒤집혀 떨어져 버둥거리는 놈을 나무에 붙여주면 잠시 주춤하는 듯하다가 이내 등을 찢기 시작한다. 50년 만에 처음 보는 경이로운 모습에 여름 밤이 즐겁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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