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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그날 밤의 거짓말' 네 사형수와 교도관의 두뇌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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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그날 밤의 거짓말' 네 사형수와 교도관의 두뇌 게임

입력
2008.08.0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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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ㆍ이승수 옮김/이레 발행ㆍ276쪽ㆍ9,800원

19세기 시칠리아 왕국의 외딴 섬 요새 감옥에서 네 명의 사형수가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남작 인가푸, 시인 살림베니, 병사 아제실라오, 학생 나르시스는 모두 국왕 암살을 기도한 혐의로 참수형을 언도 받았고, 그들 모두는 ‘불멸의 신’이 지휘하는 비밀결사 단원이다. 폭압적인 교도 행정으로 ‘총잡이’(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에 나오는 암살범)란 별명을 지닌 리티스 사령관은 네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 협상을 제안한다. 누구라도 ‘불멸의 신’의 정체를 밝힌다면 모두의 목숨을 살려줄 것이다.

죽음이냐 배신이냐, 출구 없는 선택에 직면한 네 죄수의 마지막 밤을, 비뚤어진 신앙심으로 잔혹한 강도짓을 저지른 사형수 치릴로-진짜 치릴로는 전날 형장의 이슬이 됐다-가 함께 한다. 치릴로는 네 사람에게 각자 자기 인생의 가장 기억할 만한 순간을 얘기해보자고 제안한다. 가장 어린 나르시스를 시작으로 그들은 어떤 개인적 경험을 거쳐 혁명에 투신하게 됐는지를, 불안과 불신이 혼재한 분위기 속에서 돌아가며 털어놓는다.

이 와중에 치릴로는 노련한 두뇌 게임으로 ‘불멸의 신’의 이름이 발설되도록 만든다(이쯤 되면 누가 치릴로로 변장했는지 알 것이다). 체제의 광적인 수호자 사령관의 완벽한 승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반란의 수괴로 지목된 왕의 동생이자 유일한 왕위상속자 시라쿠사 백작 일당이 타도되는 걸 지켜보던 사령관은 문득 무언가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그날 밤 죄수들의 태도를 돌이켜 보는 그에게 의심과 회의가 스멀스멀 밀려든다.

정교한 추리소설적 구성이 돋보이는 이탈리아 소설이다. 하나의 에피소드 아래 네 개의 모순된 시각이 펼쳐지는 모습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 배경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는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보다는 19세기 초 문학, 정치 평론, 오페라 작품 등을 통해 시대 분위기를 창출하는 세련된 취향을 보여준다. 플라톤, 파스칼, 레오파르디, 만조니, 발자크, 스탕달을 아우르는 텍스트들이 수시로 인용되면서 작품의 지적 재미를 늘린다.

시인이자 교사로 활동하던 제수알도 부팔리노(1920~1996ㆍ사진)는 61세(1981년)에 발표한 첫 소설 <전염병 전파자의 잡다한 이야기> 로 ‘캄피엘로 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한다. 이번 소설은 1988년 발표한 그의 세 번째 장편으로, 그해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스트레가 상’의 수상작이다. 국내에선 94년 출간 후 절판됐다가 이번에 새로 출간됐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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