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위한 전체 리허설이 끝난 후 지휘자 정명훈(55)은 혼자 피아노에 남았다.
이날 밤 베토벤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삼중협주곡> 협연을 위해 손가락을 풀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쇼팽의 <에튀드> 와 <발라드> . 짐을 챙기던 단원 일부가 이 모습을 보고 카메라를 꺼내들기도 했다. 발라드> 에튀드> 피아노와>
“옛날같이 손가락이 돌아가지를 않네요. 몸이 굳어져서 그런가. 그런데 옛날보다 피아노가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연습이 끝난 후 대기실에서 만난 정명훈은 피아노 이야기를 하며 예전 기억을 돌이켰다.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2위를 했던 정명훈이다. “실수 하나만 해도 실망해서 말도 안했어요. 피아노와 싸우느라 방에 틀어박혀 있곤 했죠. 그래서 와이프가 지휘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하.”
아시아 필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정상급 음악인으로 구성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 정명훈이 주도해 1997년 만들었다. 재정 문제로 활동을 중단했다가 인천시의 지원으로 2006년 부활, 한국과 일본에서 매년 공연을 열고 있다. 정명훈은 “만나는 시간이 짧아 하나하나 연습을 할 수는 없지만 참 재미있고 분위기가 따뜻하다”고 말했다.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건 음악에 비해서는 아주 작은 일이에요. 이렇게 깊이있고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서 아시아인들이 가까워진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리고 아시아에는 더 좋은 오케스트라가 필요합니다.”
그는 아시아 필의 연주에 대해 “앙상블은 부족할 수 있지만 시카고 심포니 악장 등 세계적 수준의 단원이 있기에 베이직 사운드에 깊이가 있다”면서 “인천에 아시아 필의 근거지가 될 콘서트홀이 들어서는 2년 후부터는 더 자주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향 예술감독 계약이 올해로 끝나는 정명훈은 재계약 여부를 묻는 질문에 “콘서트홀 문제가 있어 서울시와 의논 중”이라고 답했다. 그는 “원래 계약대로라면 올해까지 노들섬에 전용 콘서트홀이 들어섰어야 하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다”면서 “노들섬은 너무 복잡하고 멀게 됐지만 서울시향 콘서트홀만이라도 꼭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 전까지는 서울시향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우선 사용권을 달라고 문화부 장관에게 요청,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밤 산토리홀의 2,000여석을 가득 메운 일본 관객들은 따뜻한 박수로 아시아 필을 맞았다. 오케스트라 쪽으로 피아노를 돌려놓고 앉아 지휘와 피아노를 겸한 정명훈, 중국 첼리스트 지안 왕,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신 가지모토가 빚어낸 <삼중협주곡> 은 아시아 필이 가진 뜻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삼중협주곡>
뒤이어 단원들의 뛰어난 기교가 돋보인 말러 교향곡 5번이 끝나자 브라보의 함성과 기립 박수의 물결이 객석을 가득 메웠고, 연주자들은 손을 맞잡은 채 인사를 했다. 그 속에서 각기 다른 국적이나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수 차례 반복된 커튼콜 후 단원들이 모두 퇴장하고 무대를 비운 뒤에도 정명훈을 부르는 박수 소리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다시 등장해 무대 앞으로 몰려든 일본 팬들과 악수를 나누는 정명훈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환했다.
도쿄=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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