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경찰서장, 검찰총장, 나아가 판사를 우리 손으로 뽑는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보여주듯이 진정한 지방자치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지방자치 하면 우리 손으로 도지사, 시장, 군수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을 뽑는 정도로 이해해 왔다. 이 점에서 지방교육감을 처음으로 주민들 스스로 뽑은 이번 교육감 선거는 우리의 지방자치 역사에 있어서 획을 그을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촛불의 힘 안 보인 교육감선거
특히 이번 선거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은 서울시교육감 선거였다. 이 선거는 보수적이고 친 이명박 노선의 공정택 후보와 진보적이고 반 이명박 노선의 주경복 후보가 맞붙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선거는 최근의 촛불시위와 나날이 하락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과 관련해 단순한 교육감 선거를 넘어서 이 대통령, 특히 그의 시장만능의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도 갖고 있었다.
사실 촛불시위에 불을 당긴 것은 쇠고기보다도 0교시수업 등 일부에서 ‘미친 교육’이리고 부르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었다. 이는 초반에 중고생들, 특히 여중ㆍ고생들이 촛불시위를 주도한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여중생은 촛불시위에서 “0교시와 심야교육 받다가 학교급식 먹어 광우병 걸리면, 그러고도 의료민영화로 치료 못 받으면 대운하에 뿌려 달라”고 현 정부의 정책을 비꼬았다.
바로 그 선거에서 공 후보가 주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그러나 보수언론들도 입을 모아 인정하고 있듯이 공 후보의 승리는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히 공 후보가 1.7%라는 아주 작은 차이로 승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공 후보는 서울의 25개 구중 17개 구에서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서초, 송파라는 ‘강남 3구’ 덕으로 승리했다. 강남 세 구를 뺀 나머지 22개구에서 공 후보는 주후보에게 4만 5,000표 이상 뒤졌다. 그러나 강남의 부유층들이 공 후보에게 주 후보보다 무려 6만8,000표나 많은 몰표를 줬다. 그 결과 공 후보는 2만2,000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공 교육감은 서울시 교육감이라기보다는 강남에 의한, 강남을 위한, 강남의 ‘강남 교육감’인 셈이다.
이번 선거가 보여준 것은 최근 촛불시위등과 관련해 침묵하고 있었던 강남의 힘, 부유층의 힘, 보수의 힘이다. 강남은 인구 면에서 서울시 전체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이 기권을 할 때 투표장으로 나와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게다가 다른 지역과 달리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에게 몰표를 던짐으로써 강북 등 다른 지역의 민심을 표의 수로써 눌러 버리고 말았다.
현대 민주주의는 결국 쪽수의 게임이다. 따라서 낮은 투표율 등으로 강남의 반란에 패배한 강북과 다수 서민들의 경우 억울할 것도 없다. 이번 선거를 통해 주목할 것은 촛불의 힘이 선거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거리를 가득 메우며 “미친 소”, “미친 교육”을 외쳤던 그 힘은 어디로 간 것일까? 촛불 덕분에 주 후보가 그나마 선전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거리의 힘이 선거라는 제도정치의 힘으로 전환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명실상부한 서울교육감 돼야
이 점에서 앞으로의 정국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갖게 되는 생각은 이 뿐이 아니다. 이번 선거가 정당투표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얼마 전 재ㆍ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참패를 안겨줬던 민심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지난 재ㆍ보궐선거의 경우 강남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공 교육감에게 한마디 충고를 하고 싶다. 보수적인 교육정책을 밀어붙이기 전에 명실상부한 ‘서울시 교육감’이 될 것인지 ‘강남 교육감’이 될 것인지 한번쯤 고민을 해보라는 것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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