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면 '파리(Paris)' 하기 쉽지만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Lyon)'의 저력을 몰라주면 섭섭하다.
리옹은 파리와 닮은 듯 다른 도시. 우선, 파리에 센강이 흐르듯 리옹에도 강이 흐른다. 그것도 두 개나. 론강과 손강이 면적이 큰 도시를 세 구역으로 딱 나눈다. 신시가지, 시내, 구시가지. 그래서 리옹에 가면 한 도시에서 세 가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식이라. 리옹은 우리나라로 치면 딱 '남도'다. 먹는 것 하나는 수도인 파리보다 몇 배나 인정받는 곳이다. 역사 깊고 맛 깊고, 인정 깊은 리옹 음식은 오늘날 '미식 일번지'로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 요리의 발달에 큰 몫을 해왔다.
버터를 듬뿍 넣은 리옹 식 맛
리옹 음식은 크게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현대 프랑스 요리의 틀을 잡았다고 평가되는 폴 보퀴스(Paul Bocuse) 셰프의 요리와 같은 정통 음식, 또 하나는 편안한 가정식에 가까운 '부숑 음식'이다.
폴 보퀴스 셰프는 프랑스에서 '스타'로 통한다. 연예인 부럽지 않을 정도의 명성과 인지도를 자랑한다. 지극히 프랑스다운 맛을 현대적으로 선보이는 그의 스타일을 두고 많은 이들, 특히 까다롭기로 유명한 레스토랑 가이드나 음식 평론가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지극히 프랑스적인, 지극히 리옹적인 맛은 무얼까? 일단, 그 맛이 풍부하다. 리옹 출신 셰프들이 다루는 식재료는 그 범위가 상당히 넓은 편. 돼지고기, 소고기 등의 육류를 부위별로 다룬다. 소고기의 위막이나 간, 콩팥, 염통 등은 프랑스의 다른 지방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맛을 이뤄낸다.
리옹의 식재료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직접 보고 싶다면 신시가지 쪽에 위치한 식재료 시장에 가보면 안다. '레 알 드 리옹(les halles de Lyon)'이라는 이름의 시장은 19세기부터 리옹 시민들의 입맛을 책임져 왔다고 한다.
그 역사를 듣고는 낡은 재래시장을 떠올리겠지만, 1970년대에 단행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지금은 쾌적한 쇼핑몰처럼 운영되고 있다. 리옹의 이름난 셰프들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시장에는 육류와 조류의 각종 부위 뿐 아니라, 인접한 마르세유로부터 공수되는 해산물 또한 빠짐없이 갖춰져 있다.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굴 코너. 굴을 산지별로, 크기나 맛별로 구분해 놓은 코너에서 직접 맛도 볼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굴 코너에 딱 붙어 있는 와인 바. 시장 속에 웬 와인 바가 있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굴 몇 점을 그 자리에서 시식하다 보면 와인 생각이 절로 나게 된다.
다양한 식재료의 맛을 프랑스 풍으로 이끌어 내는 데에는 질 좋은 버터와 질 좋은 소금 만한 게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즘은 프랑스에서도 몸매나 건강 관리 차원에서 버터를 줄이는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역시 버터를 가득 맛보며 와인으로 느끼함을 쑥 눌러줄 때 죄의식이 들만큼(칼로리가 너무 높아서, 이 좋은 것을 혼자 먹어서) 맛있는 프랑스 요리를 먹었다는 만족이 밀려온다.
그리고 리옹의 요리들은 아직도 상당수 전통적인 방식에 따르고 있어서, 그런 맛의 사치를 경험하기에 최적. 재료의 맛을 돋우고, 소화를 돕기 위해 양파를 많이 쓰는 편이다. 재료에 어울리는 와인을 요리에 더함으로써 육류의 다양한 부위로 인한 잡내를 잡고, 심심치 않게 크림을 섞어 그 맛을 끝도 없이 풍부하게 만든다.
"이모, 술 한병 더 주세요"하는 부숑
자, 리옹에서 꼭 맛을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코스는 바로 '부숑'. 부숑은 '병마개' 또는 '코르크'라는 뜻이 있지만, 프랑스 옛날 말로는 '덤불숲'의 뜻도 겸한다.
간판이 아직 없던 중세 시대, 선술집을 알리는 모종의 표시로 나무 덤불을 아무렇게나 뭉쳐 걸어두었던 것이 유래가 되어 리옹의 선술집은 '부숑'이라 불린다. 즉, 부숑이라 알고 들어갔다면 고급 요리보다는 친근하고 서민적인 맛을 제대로 볼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겠다.
부숑을 이끄는 주인장은 주로 여자들이다. 손맛 좋고 인심 좋고 사람 좋은 아주머니 조리장들이 부엌을 관장한다. 부숑에 들어가서, 그 곳이 진짜인지 이름만 부숑인지 확인하려면 맛을 다루는 아주머니가 계신가를 확인하면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모집' 등으로 불리는 선술집처럼 말이다.
손맛 좋은 이모들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그 마음이 같은지, 음식도 푸짐하게 주고, 잘들 먹고 있는지 늘 신경 쓴다. 프랑스 요리를 먹을 때 늘 걸리적 거리는 와인 값도 부숑에서는 해결된다. '뽀(pot)'라고 불리는 리옹 특유의 46cl짜리 빈 병에 담아주는 하우스 와인, 즉 '막술'이 있으니까.
리옹의 대표적인 식재료인 수제 소세지를 통감자와 푹푹 삶아 육수에 익힌 '소시송 오 뽐(Saucisson aux pommes)' 하나에 와인 한 '뽀'를 주문하면, '콩 삶은 것' '절임 야채' '신선한 순무' 등이 반찬처럼 딸려 나온다. 먹다가 식사를 할 요량이면 '오늘의 요리'나 와인에 익힌 소 혀, 생선살을 갈아 만든 프랑스 식 어묵의 크림소스에 빵을 찍어 먹는다.
아, 프랑스 선술집 얘기하다보니 술 한 잔 당긴다. 우리 집 앞, 참새 방앗간 같은 이모네(식당의 본명은 '가보자 식당'이지만) 들러서 감자탕에 소주로 이열치열해야겠다.
박재은ㆍ음식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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