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절승(山海絶勝)'이란 바로 변산을 일컫는 말일 게다.
칠산 앞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변산반도. 내변산의 뭍과 외변산의 바다가 어우러져 절경 중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좀 다녔다는 분들이 꼽는 변산의 절경은 전나무숲길 고즈넉한 내소사와 수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채석강, 염전과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과 시인 안도현이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가자고 했던 모항 등이다.
물론 이곳들만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변산이 담은 절경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산과 계곡, 들과 바다로 이뤄진 변산의 곳곳에 아름다움이 끝없이 이어진다. 변산에 내딛는 발걸음이 처음이 아니라면 변산의 숨겨진 속살을 찾는 여행을 추천한다.
내변산 월명암ㆍ직소폭포 트레킹
변산은 밖으로 산이 둘러치고 안으로 계곡이 오밀조밀 형성돼 있다. 마치 분지처럼 생긴 한가운데에 산세의 풍광이 절정을 이룬다. 그 빼어난 아름다움을 담뿍 담아내는 방법은 트레킹이다.
산을 넘어 산 속의 절경을 감상하고 다시 산을 넘어오는, 몸이 힘든 여정이지만 땀의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변산에 가기 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내변산 트레킹 최고의 코스는 내소사와 월명암 직소폭포를 볼 수 있는 남여치-내소사(5시간 소요) 코스다.
736번 지방도 옆 남여치 고갯마루 입구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했다. 하늘이 꾸물거리는게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내를 건너고 오르막에 접어들 무렵,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방울 굵기가 만만치 않다. 다시 차로 와서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30분만에 비는 멈췄고, 산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지루할 만큼 오르막은 계속됐다. 30여분 힘겹게 오르니 능선. 반가운 바람을 만났다. 온몸에 범벅인 땀을 씻어내는 상쾌한 바람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숲은 더욱 깊어졌다. 물을 꺼내 한모금 삼키는데 물이 목구멍을 넘어가기도 전에 휘발해버리는 느낌이다.
낙조대 아래 자리잡은 월명암(月明庵)에 이르렀다. 692년(신라 신문왕 12년)에 창건됐다는 고찰이다. 얼마 전까지 당우 하나만 있던 소박한 절집이었는데 불사를 통해 여러 전각이 들어서 제법 규모가 커졌다.
절마당은 마치 산봉우리들을 호령하듯 변산의 산자락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주 부석사에서 바라본 풍광과 견줄 만하다더니, 비구름 피워올리는 산자락이 첩첩이 늘어선 품이 그만큼 장쾌했다.
월명암에서 내려가는 길, 짙은 안개 속의 숲길을 벗어나자 시야가 뚫리면서 내변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로 이어진 능선길, 눈 돌릴 때마다 기암들이 다른 얼굴을 보여줘 걸음은 자꾸만 멈춰지고 느려진다.
자연보호헌장비를 지나 '직소보' 옆으로 난 호숫길을 걸어 올랐다. 봉래구곡의 길이다. 물거품이 마치 물이 부글부글 끓는 듯해 보이는 선녀탕과 계단 폭포인 분옥담을 지나자 내변산 볼거리의 하이라이트인 직소폭포가 나타났다.
거대한 암벽 사이로 30m의 두툼한 물줄기가 장쾌하게 떨어진다. 주변의 넉넉한 산세를 함께 물기둥에 녹여내는 풍경이 금강이나 설악의 폭포들과 겨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직소폭포를 넘어서면 곰소만이 앞마당처럼 펼쳐지는 재백이재, 관음봉 삼거리를 통해 지친 발걸음을 옮기면 산행의 마지막 내소사가 나온다.
적벽강 부안댐이 빚은 숨은 비경
많은 이들은 변산의 채석강은 알면서 적벽강은 생소해한다. 적벽강은 채석강에서 격포해수욕장을 끼고 돌아간 대막골 연안에 있다. 채석강이 그렇듯 적벽강도 강이 아니다. 송나라 소동파가 놀았다는 적벽강과 비슷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곳. 파도가 깎아낸 붉은 해안단층의 절벽이다. 채석강과는 다른 분위기로 훨씬 장대하다.
적벽강 언덕 위에는 수성당이란 당집이 있다. 서해를 거닐며 풍랑에서 어부를 보호하는 여신인 개양할미를 모시는 곳이다. 부안 사람들은 "변산의 기운이 한곳에 응집된, 보통 사람들도 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전국의 많은 무속인들이 그 기운을 받으러 찾아드는 곳이다.
변산의 숨은 속살의 하이라이트는 부안댐이다. 부안군 관광안내지도의 벼락폭포 표식만을 보고 별 기대를 않고 찾아 들어간 곳인데, 변산을 다시 생각케 만든 절경이 그곳에 숨어있었다. 1996년 내변산 한가운데에 부안댐이 완공되면서 중계계곡이 호수로 변한 곳이다. 깎아지른 기암괴석이 물에 반쯤 잠기며 절경을 이뤄냈다.
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인 김유경씨는 "댐 안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본 이들은 호숫가 절경만으로도 부안이 충분히 먹고 살 만할 것이라며 감탄한다"고 했다. 중국의 계림과 같은 분위기에 넋을 놓게 된다는 것. 아쉽게도 부안댐은 상수원보호지역이라 일반인의 보트 투어 등은 금지돼 있다.
호수 안쪽에 들어가기 전에도 기암과 물이 빚는 황홀?풍경을 맛볼 수 있다. 맛보기라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를 부르게 하는 풍광이다. 댐 밑으로 흐르는 직소천 너머, 병풍을 두른듯 늘어선 기암절벽의 중심에 바위산 중턱에서 물기둥이 울컥 토하듯 뻗어나온다. 비 오면 더욱 또렷한 자태를 자랑하는 벼락폭포다. 선계의 풍경인 양 눈이 어지럽다.
물가의 정한 풍경도 마음을 훔쳐간다. 꽃과 수풀, 기암이 맑고 정한 물 위에 제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는다. 물길 아래 수중보 위로 내를 건너면 벼락폭포에 이르는 산길이 이어진다. 30분 정도 소요.
개암사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634년(백제 무왕 35년)에 세워진 천년고찰로 내소사 만큼 운치가 있는 사찰이다. 절집의 자리는 변한의 왕궁 터다. 단청이 다 벗겨진 화장기 없는 대웅전이 단아하다.
대웅전을 안고 있는 뒷산 꼭대기에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있다. 백제 멸망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울금바위다. 대웅전과 울금바위가 빚어내는 담백한 조화에 눈맛이 개운하다.
부안=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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