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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도사람,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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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도사람, 이청준

입력
2008.08.0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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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초저녁부터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줄창 소리를 뽑아대고, 사내는 그 여인의 소리로 하여 끊임없이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견디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북 장단을 잡고 있었다.’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로 세상에 더 잘 알려지게 된 이청준 소설의 첫머리다. 소설은 1960년대 ‘전라도 보성읍 밖의 한적한 소릿재 길목에 자리잡은 초가 주막’에서 시작해 끝없이 길 위를 떠돌며 소리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한 여인의 고단한 삶과 한(恨), 어긋난 인연, 그리움을 풀어간다.

▦<서편제> 는 올해로 꼭 30년이 된 소설집 <남도(南道)사람> 에 <남도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실린 26쪽짜리 단편이다. 소설집에는 이것 말고도 남도 사람들의 이야기 13편이 더 실려 있다. 이청준에게 그들은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가족사의 비극이나 불행을 자신의 운명과 부덕과 허물 탓으로 돌려, 울음소리조차 함부로 못 내는 사람들. <눈길> 에서 아들의 발자국을 밟으며 눈물로 돌아오는 어머니가 그렇고, <새가 운들> 에서 그 어머니 곁에 눈물짓고 서 있는 작가 자신인 제민이 그렇고, 영화 <서편제> 의 송화가 그렇다.

▦이청준은 이를 원망이 아니라 밝은 빛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일종의 ‘원죄의식’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한은 독하지 않고 깊다. ‘사는 것이 바로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화는 의붓 아비를 용서했고, 그 용서로 한이 소리가 됐으며, 어머니는 집안을 망친 술주정뱅이 아들(작가의 형)을 용서했다.

이청준은 자신 역시 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굳이 그것을 외면하거나 넘어서려 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고백했다. 그에게 그 원죄의식이야말로 소설을 쓰는 힘이며, 무엇보다 빛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나면 스스로 견딜 수 없을 만큼 뻔뻔스러워질 것을 염려했다.

▦그는 평생 그 다짐을 지켰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그는 빛이 부끄러운 듯, 그늘 속에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가 남으로 남으로 가도가도 닿지 않는 남도 자락인 고향 장흥을 떠나지 못하고 되돌아가곤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과정이 그에게는 소설의 과정이었다. 그 ‘길 위의 날들’ 이야말로 바로 자신의 삶의 끈이었기에 늘 어둡고 지난(至難)한 밤 산길 걷기를 멈추지 않고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했던 남도의 이야기꾼 이청준. 31일 이승을 떠난 그가 이제는 ‘당신의 천국’에서 편히 쉬기를.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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