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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실용외교'의 예견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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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실용외교'의 예견된 위기

입력
2008.08.01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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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실용외교’에는 실용이 없다. 그것이 외교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독도표기 원상회복이 이뤄졌지만 근본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 정부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외교가 좌파적 민족주의 ‘이념’에 기초해 있어 대외정책이 갈등 유발적이었으므로, 그로부터 벗어나 실익을 추구하는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겠다고 했다.

대미 근본주의가 조성한 함정

그러나 실제 이 정부의 외교철학은 실용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가치 중심주의이다. 이 정부가 구상하는 ‘한미동맹 미래비전’은 “안보동맹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공유하면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이고 포괄적인 동맹을 구축한다”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담고 있다. 군사동맹에 더하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한’ 보다 포괄적이고 강력한 일반적 동맹 이상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공동의 가치에 기초한 한미일 3각 협력체제 구축도 비슷한 예가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가치중심주의는 ‘공유된 가치’의 이면에는 ‘공유되지 않은 가치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어 실용주의와 거리가 먼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먼저 전 정부의 대북 약속을 전면 부인하고 수 십 년 계속되어온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대외관계의 일부로 축소하면서 남북관계의 문이 닫혔다. 대미관계는 한국외교의 성역으로 선포하는 한편 대중관계는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정도로 소홀히 함으로써 중국으로부터 시대착오적 피후견인 대접을 받았다.

한국의 미국 근본주의는 미국에게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북한 중국을 배제한 한국이 미국에 얼마나 전략적 가치가 있을지 생각해 보자. 미국은 북핵 제거에서 강압전략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전략을 전환하였다. 대북 압박용 한미일 삼각협력체제는 사실상 폐기처분되었다. 협상을 통해 북핵을 제거하려는 미국에게 북한에 전화 한 통할 수 없는 한국은 외교적 존중의 대상이 될까?

미국의 관점에서, 중국은 자신의 지도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ㆍ의지를 겸비한 나라다. 대중 레버리지를 확보하려 할 것이 당연하다. 중국 미국이 한국을 누구의 편으로 간주한다면 이들에 대한 한국의 외교적 힘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관계가 심화된 상태에서만 ‘한국의 철회’가 미중 양국의 득실 계산에 의미가 있다. 한국의 미국 근본주의는 자신을 미국에게는 ‘쉬운 (easy to work with) 녀석’으로, 또 다른 한편, 신냉전 프런티어의 말단 초병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전 미 국무차관 솔로몬은 수년 전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반일 민족주의가 크게 대두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미국은 다양한 이유에서 한국 대신 일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한중 간 대일 전략공조체제가 형성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통일한국이 반일 민족주의를 고리로 21세기 경쟁자인 중국과 공조한다면 미국에 심각한 정치 경제 전략적 손실이라는 말이다.

대통령부터 외교철학 바꿔야

‘솔로몬 이야기’는 한국이 미국에 대해 가지는 레버리지를 미국의 고위 관리가 드러냈다는 데서 의미를 가진다. 유사한 맥락에서 다른 주변국들도 한국에 레버리지를 허용하는 부분이 있다. 진정한 실용주의는 이러한 한국의 자원과 레버리지들을 정확히 인식, 확대 재생산하고, 시대적 상황과 외교적 목적에 따라 매트릭스화하는 과정을 시종일관 지도해야 할 것이다.

외교위기를 극복하려면 이 대통령부터 외교안보철학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념에서 자유로운 실용주의 외교철학을 확립함으로써 외교팀은 발상을 전환하고 정책적 창의성을 높여 외교적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박건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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