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일 역주 / 학고재
227행 6,000여 자의 한자. 요즘 활자와 책 크기에 맞추면 10쪽 남짓한 양이다. 그나마 형체를 알 수 없이 마모된 글자가 160여 자나 된다. 1908년 중국 둔황의 천불동에서 저자도 서명도 알 수 없이 앞뒤가 잘려나간 채 발견된 한 책자. 그 안에는 그러나 1,300년 전에 무려 40여 개의 나라를 거쳐 당시 세계의 서쪽 끝까지 갔던 한 신라인의 발자취가 담겨 있었다. 혜초(704?~780)의 ‘왕오천축국전’이다.
정수일(74)이 역주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2004)을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는 것이 언젠가부터의 즐거움이다. 혜초가 남긴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를 되살리고 누락된 글자는 복원해서 정수일이 펼쳐 보여주는 ‘왕오천축국전’의 세계는 놀랍고 광대하고 아름답다. 723년 중국 광저우를 떠나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727년 실크로드 톈산북로의 쿠차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혜초는 간결하고도 향기 그윽한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가 기행했던 세계의 사람살이와 풍물을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정수일을 비롯해 그에 앞선 고병익 등 연구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정수일은 10쪽 분량의 혜초의 기록에 503개의 치밀한 주석을 붙여 500여쪽의 책으로 거듭나게 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는 혜초의 시도 5수 들어있다. 그 중 한 수가 혜초가 이 땅 최초의 세계인이었던 신라인, 곧 계림인이었던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얼마 전 작가 김탁환(40)이 장편소설 <혜초> 를 발표했다. 그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을 읽고, 혜초와 고구려의 고선지(혜초가 당으로 돌아오고 24년이 지난 751년 고선지는 당의 장수로 이슬람군과 격전을 벌였다)의 삶을 하나로 연결시켜 문학적 상상력으로 소설화한 것이다. 역사와 문학은 그렇게 만난다. 고전이야말로 그 모두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혜초의> 혜초>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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