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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13> 삼성증권 '처녀 엄마' 최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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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13> 삼성증권 '처녀 엄마' 최은진

입력
2008.08.01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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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화수분 같아요. 아무리 퍼내도 차고 넘쳐요."

그는 갓 서른을 넘긴 처녀다. 그런데 4년 전 아들이 생겼다. 요즘은 3남매의 엄마를 자처한다. "나눔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언뜻 알쏭달쏭하다. 떳떳한 미혼모(?) 최은진(31) 삼성증권 반포지점 대리의 사연은 이렇다.

최 대리는 2004년 '삼성어울리기봉사단'에 가입했다. 회사(삼성증권)에서 틈틈이 맛본 봉사의 기쁨을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결단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갈 곳 없는 미취학 아동들의 피난처인 경기 수원시 '경동원'에서 요셉(10)이를 처음 만났다. 엄마가 떠나고 아빠가 시설에 맡긴 뒤 찾지않는 아이였다. 이 때 요셉이와 맺은 결연은 어디까지나 봉사단 차원의 만남이었다.

이듬해 요셉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취학 아동들의 공간인 '효행원'으로 옮겨졌다. 버려진 아이에게 그런 식의 만남과 헤어짐은 흔한 일이다. 최 대리 입장에서도 사정이 엇비슷한 다른 아이를 맡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자신을 따르던 아이가 눈에 밟혔다. 잠자리에 들면 그의 선한 눈망울이 아른거렸다. 개인적으로 후원에 나섰고, 주말마다 짬을 내 요셉이를 만났다. 어느새 "아들"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었다.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됐다. 외톨이로 알았던 아이에게 형(우근)과 누나(다솜)가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진 터라, 이들 남매도 서로에게 피붙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효행원에서 서류를 통해 남매임을 확인했다. "모두 경동원에 있다가 각자 취학에 맞춰 차례차례 효행원으로 옮겨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뒤 최 대리는 3남매의 '엄마'가 됐다. 특별한 건 없다. 그저 아이들과 영화보고 쇼핑하고 식사하면서 웃고 떠들고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전부다. 어른스럽던 막내 요셉이는 형과 누나를 만나고부터 어리광이 부쩍 늘었다.

안쓰러운 느낌이 들다가도,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 해 다행스럽기도 하다. "시설에 있으면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저를 만나는 날만이라도 함께 뭉쳐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소망도 품어본다. '3남매의 마음 속 상처가 부디 아물기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도 친 누나처럼, 이모처럼 편하게 연락하는 사이가 됐으면….' 아마 이뤄질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 속에서 아이들이 누릴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누구든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이 깃든 나눔은 이처럼 위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받는 이들의 인생만 변하는 게 아니다. 최 대리는 정작 나눔을 통해 삶이 바뀐 건 자신이라고 말한다. "남에게 (시간이든 돈이든 마음이든) 줬다고 여겼는데, 도리어 영혼과 생활이 풍성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어요."

사실 그는 입사 전만해도 봉사, 기부, 후원 같은 일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삼성증권 안에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아마 3남매와 인연의 끈도 잇지 못했을 것이다. 기업 차원의 나눔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1999년 삼성증권에 입사한 그는 회사 선배가 아동후원단체 '굿네이버스'에 다달이 후원금을 내는 걸 보고 동참했다. 당시만 해도 그저 계좌에서 적은 돈이 빠져나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이 수년 간 지원해오던 방글라데시 아이가 지난해 성인이 돼서 후원아동이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고는 지속적인 후원의 힘을 새삼 깨닫고 후원액수도 늘렸다.

물질을 나누다 보니 몸과 맘도 움직였다. 장애인과 도예, 시각장애인과 볼링, 소년소녀 가장과 클레이(점토공예), 아름다운 가게, 경제증권교육 등 봉사가 붙는 회사 주최 행사엔 빠지지않고 참석하면서 나눔의 참뜻을 알게 됐다.

내친 김에 2004년부터는 주말과 퇴근 후 개인시간을 쪼개 직접 봉사에 나섰다. 여러 단체에 가입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복지관, 공부방, 농촌학교, 노숙자 쉼터 등 어디든 달려갔다. 그렇게 3남매의 엄마가 됐고, 노숙자의 동료가 됐으며, 시각장애인의 친구가 됐다. 한번 맺은 연은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늘 목마르다. 어느 겨울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해 음식을 싸 들고 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수소문해보니 며칠 전에 숨졌다는 것이다. '조금만 일찍 올걸. 잠시라도 친구가 되어 드렸어야 하는데….' 그가 나눔을 거르지않는 이유다.

나눔은 배려를 수반하기 마련. 장애인이나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사소한 사고나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이 생기기 쉽다. 해서 그는 대한적십자에서 응급처치 교육과정도 수료했다. 청각장애인과 깊은 속내를 나누기 위해 수화도 배웠다.

삶에 스며든 선행은 일상도 변화시켰다. "다양한 환경에 처한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다 보니 고객에겐 친절하게 되고, 가끔 창구를 찾는 청각장애인에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너무 뿌듯해요. 업무 효율도 높아지고요." 그의 꿈은 '장애인을 위한 금융서비스' 이다.

나눔은 묘약이다. 그는 주면서 더 많은 것을 받고 있노라고 했다. 나눔의 힘이 결코 작지 않다는 믿음도 있다. "저녁을 얻어먹던 노숙자가 아르바이트를 통해 쪽방을 구하고 조금 형편이 나아지자 다른 노숙자를 위해 함께 저녁을 대접하는 걸 보고, 나눔은 다시 나눔으로 돌아온다는 걸 느꼈죠."

그는 지난해 삼성봉사단에서 상을 받았다. 상금은 모두 기부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 도리어 만남을 통해 사랑과 감사를 거저 받고 있는 처지인데, 세상에 알려지는 게 민망하고 부끄럽네요." 작은 빛도 각박한 세상을 밝히는 법이다, 시나브로.

■ 삼성증권 '경제증권교육'

서울 문정동 ‘송파꿈나무학교’. 4평 남짓한 공부방에 밥상 여러 개가 놓였다. 9명의 저소득층 아이들(초등 4~6학년)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낯설기만 한 ‘경제’ 공부를 할 참이다. 아이들 표현에 따르면 “돈 많이 버는 대기업”인 삼성증권 직원들이 일일 교사다. 수업은 기본적인 경제용어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경제활동: “무인도엔 가게가 없으니까 돈이 필요 없어요.”

기회비용: “100원이 더 반짝반짝 빛나서 500원짜리 동전이랑 바꿨어요.”

희소성: “물이 안 나오는 사막에선 물이 1억원이에요.”

용돈: “할머니 흰 머리카락 뽑고 빨래 널고… 생고생하는데 돈은 절대 안 줘요.”

선생님의 정답보다 아이들의 즉흥적인 대답이 귀에 척척 달라붙는다. 조부모 가정, 외부모 가정, 소외계층, 식당보조나 계단 청소하는 부모의 자녀라는 그림자는 최소한 해맑게 묻고 답하는 아이들의 낯엔 없다.

용돈관리 교육이 이어졌다. 그런데 웬걸, 용돈을 못 받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한달 용돈이 1,000원인 아이도 있었다. 수미(이하 가명ㆍ초등4)는 “매달 5만원, 10만원 받는 아이들도 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 먹고 싶은 거 참고 살아요”라고 했다. 그래도 한달 용돈 3,000원을 쪼개 기부(1,000원)도 하고, 엄마 선물(500원)도 사는 착한 아이다.

용돈기록장 쓰는 법을 알려주는 게 뭔 도움이 될까 싶은데, 아이들은 도리어 귀를 쫑긋 세운다. 보경(초등5)이는 “2,000원을 어디다 썼는지 다 적고 보니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했고, 경철(초등6)이는 “남은 용돈은 저축하면 되겠다”고 했다.

송파꿈나무학교의 김신영(27) 교사도 “경제와 같은 분야는 선뜻 도움 받기가 어려운데, 관련 기업에서 알기 쉽게 가르쳐주니 집중력이 높은 것 같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금새 “밥 달라”고 보챘다. 2시간의 경제교육이 아이들의 삶에 얼마나 긴 여운을 남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친구들과 배운 내용을 나누는 재잘거림만은 벌써 경제박사가 된 듯하다.

삼성증권은 2005년부터 ‘청소년 경제증권교육’을 하고 있다. 주로 공부방, 복지관, 탄광촌, 빈민촌, 달동네 등을 찾아간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알기 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게 목적이다.

그 동안 4만여명이 혜택을 누렸다. 신선애(29) 담당주임은 “주변에 작업복 차림이나 알코올에 찌든 어른들만 보다가 양복을 빼 입은 증권사 직원들이 교사로 나서면 아이들의 역할모델도 바뀐다”고 귀띔했다.

지금까지 봉사에 참가한 임직원은 598명. 김종현(27) 송파지점 주임은 한 차례 경제증권교육 강사를 했던 게 자극이 돼 현재 지점 봉사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증권교육은 또 다른 나눔의 시발점 역할을 하고 있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참여형 사업인 경제증권교육을 통해 청소년뿐 아니라 직원들도 나눔의 참뜻을 깨닫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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