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주권 미지정 지역(Undesignated Sovereignty)’으로 변경했던 독도 영유권 표기를 30일(현지시간) 한국영토로 전격 원상회복하면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해 결단을 내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는 미측의 ‘생색내기’일수도 있으나 5,6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해야 하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돌출된 한미 갈등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결단의 배경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비교적 신속하게 독도 영유권 표기에 관한 미국내 혼선을 한국의 요구에 맞춰 정리한 것은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에 대한 배려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측이 처음부터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나마 부시 대통령이 최고의 전략적 판단으로 한미동맹의 손상과 반미감정의 격화를 억제하는 결단을 내려준 것은 양국 모두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독도 영유권 표기 변경 조치가 미 국무부내 정무 파트인 동아태국과의 사전 협의없이 국무부 정보조사국의 주도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이 내부 불협화음을 일거에 해소하는 데에도 부시 대통령의 결단만큼 강력한 수단은 없었을 것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원상회복 조치가 단행되기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미 정책에 변화가 없다’‘독도 영유권 표기변경 같은 문건 표준화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원상회복 조치가 예상 밖으로 속전속결 방식으로 진행된 데에는 다른 영토분쟁과 독도문제를 비교해 볼 때 미측이 형평성을 잃고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스스로를 방어할 논리가 없었다는 사정도 작용했다. 미측이 센카쿠제도, 쿠릴열도 등을 둘러싼 영토 분쟁에서‘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외치면서도 영유권 표기에선 여전히 일본령, 러시아령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독도만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한 것은 누구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주미 한국대사관측은 미측에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측은 처음부터 독도 영유권 표기변경 시기가 적절치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고 급기야는 부시 대통령의 결단 형식을 통해 스스로의 논리 결여를 시인한 셈이다. 미측은 차제에 센카쿠제도, 쿠릴열도 등에 대해서도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영유권 표기를 변경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었겠으나 한국과 일본, 러시아를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임기 말 부시 대통령에게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일본측의 예상되는 반발을 최소화하는 데에도 부시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형식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측으로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물밑 로비를 통해 밑에서부터 영향력을 높여갈 길도 일단 막혔고 그렇다고 부시 대통령에게 대놓고 직접 포문을 열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원상회복 조치를 해주면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치 한국에 ‘선물’을 준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부시 대통령의 결단은 분명히 긍정적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기에는 한미 사이에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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