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들이 하도 그악스럽게 제 입맛과 이익에 맞는 주장만 해대는 통에 제목만 봐도 아예 읽기조차 싫어질 때가 많지만, 그래도 신문마다 슬쩍 들춰보는 곳이 있다. ‘바로잡습니다’라는 난이다. 요즘은 모든 신문들이 대개 2면 쯤에 이 타이틀을 달고 기왕에 잘못 나간 보도가 있으면 그 내용을 알려주고 형식적으로나마 바로잡는다.
한 신문은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는 영화 제목을 ‘쇼핑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라고 썼다가 바로잡았다. 쇼 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한 신문은 로또 당첨번호 6개 중 1개를 잘못 내보냈다가 이튿날 바로잡았다. 오늘도 꽝이네, 하고 사정없이 찢어 버렸던 로또 생각에 화난 사람들 많을 것이다. 사람 이름 잘못 쓰는 건 종종 있는 일이고,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산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고, 보도의 정확성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신문으로서는 낯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이런 바로잡습니다는 대부분 그냥저냥 마무리되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의도적인 잘못을 범했다가 들통날 때다. 얼마 전 미국산 쇠고기 식당 사진을 연출한 것으로 밝혀진 한 신문은 바로잡습니다가 아니라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 아래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의 영유권 표기를 ‘미지정 지역’이라고 바꿨다가 일주일 만에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령으로 원상회복시켰다. 그 위원회 사이트에 독도가 여전히 ‘리앙쿠르암’이라는 명칭과 함께 다케시마라는 일본식 표기와 병기된 채로 남은 것은 풀어야 할 과제지만 그나마 신속한 바로잡습니다가 이뤄진 것은 다행이다. ‘악동’ 부시가 새삼 대견해 보이기까지 한다.
국제관계에서의 이런 잘못도 바로잡습니다가 되지만, 결코 바로잡아질 수 없는 일이 있다. 민주주의 정치, 대의제 정치에서의 투표 행위가 그렇다. 투표는 아무리 그 결과가 문제 있더라도 결코(혁명적 방법이 아니고는) 바로잡습니다가 허용될 수 없는 영역이다. 일껏 뽑아놨더니 몇 달째 허송세월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 바로잡아버리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그저께 처음 직선제로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15.4%였다. 그 중에서 40.09%를 득표한 당선자는 결국 전체 유권자의 6% 정도의 지지만을 받았을 뿐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10%대의 투표율이라면 그 선거는 선거로서의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투표율이 낮아도 민주주의에서 선거 결과는 지상명령이다. 바로잡습니다는 없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뿐만 아니라 한국의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이번 선거의 낮은 투표율을 휴가철이라서 그렇다며 날씨 탓을 하거나, 교육감 선거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 그렇다느니 등등 유권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분석이 있지만 그것은 결과론일 뿐이다. 10%대의 투표율이란 유권자들의 투표 불참이 아니라 투표 거부다.
교육감 선거를 보수 대 진보, 전교조 대 반전교조로 몰아가는 정치와 언론의 행태가 재연될 때부터 유권자들은 선거를 조롱하고, 그 판에 들러리 서기를 거부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민주화된 한국사회에서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유권자의 절망적 항의’라고 규정했다. 바로잡습니다도 안 되는, 쇼만도 못한 이런 선거와 투표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종오 문화부 부장대우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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