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태아 성(性) 감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불법 낙태도 대부분 임신 초기에 이뤄지는 만큼 낙태가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까지 성별을 감출 필요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헌재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이 있는 상황에서 의료법이 낙태 자체가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에도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것은 의료인의 직업활동의 자유와 임부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모자보건법이 ‘유전적 결함’이나 ‘강간에 의한 임신’등 낙태가 허용되는 예외적 경우라도 임신 7개월(28주)이 지나면 낙태를 할 수 없게 규정한 점과 형법이 불법 낙태를 처벌토록 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의 완화도 헌법불합치 결정의 주요 근거가 됐다. 헌재는 2006년 기준 전체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07.4명으로 자연성비(106명)에 근접해 있는 점을 들면서 “성별 고지가 낙태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헌재가 성별 고지의 완전한 허용을 주문하지 않은 것은, 잔존해 있을 지 모를 ‘남아 선호사상’에 대한 사회적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체 성비의 조화가 사회적 성숙보다는 ‘성별 고지 금지’라는 법규제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재판관 9명 중 8명이 ‘태아 성별 고지 금지’의 위헌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5명이 헌법불합치(위헌을 전제로 법 개정 전까지 현 법률 적용) 의견을 냈고, 이공현ㆍ조대현ㆍ김종대 재판관 등 3명은 한걸음 더 나가 “태아 성별 고지 행위를 태아 생명 박탈 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며 단순 위헌을 주장했다.
반면 이동흡 재판관은 “임신 후반기에도 태아 성별 고지 이후 낙태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산모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며 합헙 의견을 냈다.
헌재 결정에 대한 의료계와 낙태반대 진영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대한의사협회 김주경 대변인은 “임부의 알 권리를 충족한다는 점에서 헌재 결정을 환영한다”며 “임신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태아의 성별을 알려줘도 낙태가 크게 늘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장석일 총무이사는 “태아 성 감별 문제로 의사와 국민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관계가 형성되고 의료인들은 의료법을 위반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됐다”며 “헌재 결정에도 불구, 무분별한 태아 성 감별 행위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박정우 천주교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총장은 “태아 성 감별이 여아 낙태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헌재 결정으로 낙태에 대한 국민 인식이 느슨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최정윤 낙태반대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복지부 자료만 봐도 2005년 한해 34만건의 낙태 중 2,500건이 성감별로 인한 것이었다”며 “임신부의 행복추구권만 지나치게 강조해 태아의 생명권을 외면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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