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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가볍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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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가볍게 살기

입력
2008.07.3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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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서 혼자 사는 선배님께 안부 전화를 했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렸다. 탈출하고 싶다는 욕구, 너무 복잡하게 살고 있다는 자책 등이 뒤얽혀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갈아 입을 운동복 세 벌이면 충분하다”는 선배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원래 많이 소유하거나 많이 소비하는 분이 아니었지만, 텃밭에 고추와 가지와 깻잎을 키우며 최소한의 것으로 살고 있다는 선배님의 이야기가 자유롭게, 또 한편 충만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유혹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운동복 세 벌이면 충분해요”

작년에 한국일보가 이사를 할 때 나는 이중 삼중으로 괴로웠다. 사십 몇 년 전 견습기자로 입사하여 한평생을 보낸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는 섭섭함, 수십 년 묵은 짐을 정리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몇 달을 악몽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짐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될 시간이 왔다.

읽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던 책과 자료들, 버리기 아까워 여기저기 모아 둔 온갖 잡동사니들, 누구를 주려고 이름까지 써놓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물건들, 이태원이나 동대문시장에 우르르 몰려가 충동 구매했던 값싼 옷들, 먼지를 뒤집어 쓴 신문 잡지 스크랩…십 년 이십 년 손도 안 댄 자료가 나올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한심했다.

유난히 정리를 못하는 나는 정리를 잘 하는 사람도 나처럼 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리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한 친구는 출장이나 휴가를 떠나기 전 날엔 온갖 살림을 정리하느라고 밤을 새우다시피 한다. 지저분하게 늘어 놓은 채 떠났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느냐고 그는 걱정한다. 그는 또 친정에 가면 어머니 살림을 정리하느라고 쉴 틈이 없다고 한다. “나는 왜 이럴까”라고 그는 비관까지 한다. 정리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자기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한다.

우리가 사들인 것, 가진 것들은 어느 순간 우리의 짐이 되고 족쇄가 된다. “이게 필요해.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 필요해질지 몰라. 예뻐서 하나 사야겠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하나 둘 물건을 사게 된다. 버리기 아까워서 모아둔 잡동사니들이 한 보따리가 된다. 구매와 소유를 딱 부러지게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어느 날 그 모든 것들이 악몽이 된다.

생활도 그렇다. 이 일 저 일 뛰다 보면 방향을 잃고 왜 뛰는지도 모르게 된다. 한평생 바쁘게 일하다가 은퇴와 함께 ‘사라져 버린’ 두 여성이 있다. 한 분은 교수였고, 다른 한 분은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낸 분인데, 모든 모임과 행사에 발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전화도 안 받고 어쩌다 연결이 되어도 절대로 점심 약속 한번 하지 않는다. 야속하게 생각하던 사람들도 차츰 이해하고 있다. 너무 무거웠던 삶의 무게를 좀 가볍게 하느라고 물 밑에 깊이 갈아 앉아 쉬고 있구나. 그러다 가벼워지면 수면 위로 떠올라 우리를 만나러 나오겠지 라고 생각한다.

무덥고 무거워 날고 싶은 여름

’엄마가 뿔났다’의 50대 주부 한자는 1년 휴가를 얻어 집을 나왔다. 시아버지 남편 세 자녀 며느리 사위 손자 시누이에 둘러싸여 지지고 볶으며 살아 온 그는 어느 날 “나만을 위해 살아보고 싶다”고 생떼를 쓴 끝에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한다. 남편이 운전하는 트럭에 짐을 싣고 이사를 나오는 날 그는 차창 밖으로 팔을 뻗고 너무 가벼워 날아가려고 한다. 짐이라곤 없는 어설픈 새 방, 그는 달콤한 늦잠도 자고 침대에 누워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신다.

무덥고 무겁다. 휴가를 떠나도 좋고 집에 머물러도 좋다. 다만 ‘가볍게 살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단 며칠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면, 뜻 깊은 여름이라고 생각한다. 강원도 산 속에서 그 선배는 말했다.

“트레이닝 복 세 벌이면 충분해요. 쓸쓸할 틈이 어디 있어요. 텃밭만 돌봐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다니까요. 하루하루 너무 행복하다니까요.”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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