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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애 연예인으로" 광풍, 고액수강료·사기극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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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애 연예인으로" 광풍, 고액수강료·사기극 '역풍'

입력
2008.07.3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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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모 방송사 유아프로그램 출연자를 뽑는 오디션이 치러진 서울 강남의 J연기학원. 부산에서 버스를 대절해 상경한 20여명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꼬마 ‘연예인 지망생’ 200여명과 어머니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학원 관계자는 “다른 연기학원들까지 합하면 1,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오디션을 봤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연예인 되기 열풍이 불고 있다. 기저귀도 떼지 못한 아기들부터 중학생까지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늘면서 전문 연예인양성 코스를 운영하는 대형 연기학원만 20여곳, 군소 학원과 기획사까지 합하면 60여곳이 성업 중이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연기학원에 등록한 아이들만 2만명이 넘고 인터넷 카페나 소모임에서 활동하는 경우까지 합하면 어린이 연예인 지망생이 10만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바르고 거울 앞에서 가수나 배우 흉내를 내던 끼 많은 아이들이 길거리 캐스팅 등을 통해‘운 좋게’기회를 얻어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됐다. 전문 연기학원에 등록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씩 수련 과정을 거치는 것이 기본이다.

연예인 열풍의 주요인으로는 연예산업의 급성장과 한류 등으로 연예인이란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점이 첫 손에 꼽힌다. 매체의 다양화로 아역 배우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연예계 진입 장벽이 낮아진 점도 한 몫 한다.

부모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아이들의 꿈을 위해” 수 백만원, 수 천만원에 달하는 수련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연기학원들은 주 2~3회, 재즈와 표정연기, 모델 워킹, 발성 등을 가르치는 3개월~8개월의 기본코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3개월 수강료가 150만원 안팎에 달한다.

1년 계약제로 운영하는 한 기획사의 경우 계약금만 200만원, 총 3단계로 이뤄진 양성코스의 단계별 수업료로 180만원을 받는다.

부모들은 험한 매니저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다. 울산에 사는 연기자 지망생 A(6)양의 어머니는 “서울 강남의 연기학원에 다니기 위해 학원 옆 오피스텔을 얻었다”면서 “6개월 코스의 주말반에 등록하고 부산에서 매주 KTX를 타고 오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극성은 아니어도 “아이들이 원한다면 밀어주고 싶다”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강남의 C연기학원에서 만난 가수 지망생 조모(7)양의 어머니 장모(30)씨는 “아이가 TV에 나오고 싶어 하니 부모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요즘 부모들은 연기학원을 영어학원이나 피아노학원에 보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여긴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마음껏 즐기면서 잘 되면 연예계에 진출하고 못 돼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에 휩쓸린 일부 부모들이 ‘내 아이 연예인 만들기’에 지나치게 매달리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최모(7)군의 어머니 유모(34)씨는 놀이공원에서 아이 사진을 찍고 연예인으로 키워주겠다고 접근한 자칭 모 기획사 대표와 덜컥 계약했다가 아이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유씨는 “기획사 대표가 계약금 300만원에다, ‘드라마 PD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등 갖가지 이유로 1,000여 만원을 더 받아내더니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면서 “아이가 요즘 TV를 켜지도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아역 배우가 TV에 출연하면 출연료를 부모와 기획사가 7 대 3으로 나누는 것이 보통인데 출연 기회가 많지 않다”면서 “사실 운좋게 성공하는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기획사나 학원 운영수지를 맞추는 데 들러리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 80년대 아역스타 "인성교육이 우선"

"자부심과 자만심은 종이 한 장 차이더군요. 자만심을 갖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

1980년대 중반 아역배우로 인기를 모았던 A씨. 그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아역 배우가 된 뒤 각종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출연하다가 중학교에 진학하며 연기를 접었다. 친구들과 마음껏 놀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였다. 그러나 그 길이 쉽지 않았다.

주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그냥 걸어가는 데도 "연예인이라 뻣뻣하다"고 수근거리기 일쑤였다. 그는 "아역배우 출신 중에 따돌림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내 잘못이 아닌데도 미안하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힘든 사춘기를 보낸 뒤 다시 연기를 하기로 결심한 그는 모 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또 다른 벽에 부딪쳤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아역배우로만 기點薩?때문이다.

그는 "신체도 성장했고 연기력도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디션을 보면 신선하지 않다고 거부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연기가 많은 도움이 되지만 아역의 이미지를 벗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재기'를 위해 자존심을 버렸다. "연기에 도움 되는 것이라면 다 배웠고 뭐든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머리를 조아렸다"고 했다.

그는 연예인이 되려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던졌다. "아이 때는 주변에서 띄워주면 끝없이 거만해지죠.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과 항상 겸손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TV가 아닌 무대에서 다시 인기를 쌓아가고 있는 그는 "연기는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면서 경험, 노력, 실력을 충분히 쌓아야 연예인이 아닌 진정한 배우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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