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검거된 보스니아 내전 대학살의 원흉 라도반 카라지치(63)가 실존인물을 그대로 흉내내 13년 동안 추적망을 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카라지치가 붙잡힐 당시 모습은 10여년 전 수배령이 내려질 때와는 완전히 달라 혀를 내두를 만큼 감쪽 같이 남을 속여온 그의 ‘변장술’이 화제를 낳았다.
일간 ‘알로(Alo)!’ 등 세르비아 신문 인터넷판이 29일 전한 바에 따르면 카라지치가 체포될 때 모습을 빼 닮은 페타르 글루마치(78)라는 민간요법사는 인터뷰를 통해 “카라지치가 그동안 내 흉내를 내면서 숨어다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카라지치가 도피 중 행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체의학을 하는 민간요법사로 일하는 세르비아인 글루마치의 하얀 수염을 기르고 두꺼운 안경을 쓴 얼굴 사진은 거의 판박이라 할 정도로 흡사했다.
글루마치는 작년 5월 빈의 한 아파트에서 현지 경찰이 급습할 당시 카라지치를 체포할 수 있었으나 경찰이 그를 알아보지 못해 간신히 검거를 피했다는 오스트리아 일간 '크로넨 짜이퉁'의 25일자 보도에 대해 당시 현장에 있던 게 자신이라고 확인했다.
크로넨 차이퉁은 카라지치로 추정되는 인물이 글루마치의 여권을 제시했으며 아파트에서 3개월간 거주하며 각종 약초와 연고를 팔았다고 전한 바 있다.
다른 신문 쿠리에르도 카라지치가 빈에 있는 세르비아인들의 집에서 ‘페라’란 이름으로 기적의 치료사처럼 의술을 펼쳤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글루마치가 카라지치의 도주를 도왔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그는 “카라치와는 일절 면식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글루마치 “카라지치 얼굴을 TV에서만 보았을 뿐이며 그가 나의 이미지와 에너지를 훔쳐왔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어 글루마치는 기자들에게 카라지치가 왜 자신으로 위장했는지를 물어봐 달라고 당부했다. 신문들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내막이 있는 지와 관계 없이 카라지치가 글루마치를 모델로 변장을 하고 다닌 게 거의 확실한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세르비아 북부 노보 셀로에 사는 글루마치는 23년 전부터 불임으로 고민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민간요법을 시술해 나름대로 지명도 있는 의료인이다.
그는 고객이 있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로 자주 출장 진료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카라지치는 검거되기 전에 ‘드라간 다비치’라는 가짜 이름으로 민간요법사로 활동하면서 건강잡지에 글을 기고하기까지 했다.
글루마치의 이웃 주민은 “카라지치가 ‘페라’의 행색을 모방한 게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세르비아 당국은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는 카라지치를 이번주 내로 헤이그의 유교전범재판소로 압송할 계획이다.
하지만 카라지치의 지지자들이 그를 헤이그로 보내는데 반대하는 시위를 연일 벌이고 있어 세르비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