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0ㆍ4 남북정상선언 혐오증이 극에 달하는 분위기다.
24일 끝난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 성명에서 ‘10ㆍ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 지지’ 란 문구를 빼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이란에서 열리는 비동맹회의 각료회의 최종 문서에 10ㆍ4선언 문구가 담기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외교전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29일 “비동맹회의에서는 한반도 조항에 관해 남북 간 입장이 균형 있게 반영돼야 한다는 게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비동맹회의 최종 문서에 7ㆍ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선언, 6ㆍ15 선언, 10ㆍ4 선언 등 5개 주요 남북 간 합의서 지지 문구를 포함시키면 몰라도 10ㆍ4 선언 지지 내용만 따로 담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10ㆍ4 선언이 문제가 되는 걸까.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결과물인 10ㆍ4 선언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 같은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과 해주 주변 서해평화협력지대, 개성-평양 철도 도로 개ㆍ보수 같은 경제협력 방안이 담겨 있다.
이명박 정부는 10ㆍ4 선언 인정은 노무현 정부와의 차별화 실패라고 본다. 또 10조원 안팎이 소요되는 합의 사항 이행은 보수층 지지를 업고 당선된 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일부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의 선전에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10ㆍ4 선언을 인정할 경우 남북관계 주도권이 북쪽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자존심을 중시하는 북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단견이라는 지적도 많다. 남북 정상 합의를 이렇게 무시하면 다음 대통령이 현 대통령의 치적을 어떻게 계승하느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특히 10ㆍ4 선언에는 경협 분야만이 아닌 군사적 긴장 완화, 핵 폐기 원칙을 규정한 북핵 9ㆍ19 공동성명 지지 문구도 들어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거부 논리가 옹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냉전적 대결 시대가 아니므로 중장기 전략에 따라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10ㆍ4 선언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 금강산 사태로 꼬여 있는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해법”이라고 조언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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