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한 몫 건질 수 있다고 해서 순번을 기다리다 보름만에 입국했는데…."
올 6월 경기 광명에서 전화 금융사기(보이스 피싱)로 빼돌린 돈을 인출하려다 붙잡힌 대만인 A씨의 어이없는 하소연에 경찰도 말문이 막혔다. 중국ㆍ대만발 보이스 피싱 범죄에 가담하려는 외국인이 그만큼 줄을 섰다는 얘기다.
하지만 A씨는 점조직화 한 범죄 조직의 윗선을 모르는 단순 인출책에 불과했다. 경찰 관계자는 "몸통들이 중국 현지에서 전화 사기를 치는 통에 추적할 길이 막막하다"며 답답해 했다.
중국ㆍ대만발 보이스 피싱 범죄가 국내에서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이 무더기 검거에 나섰지만 국내에서 돈을 수거해가는 단순 인출책들만 잡힐 뿐 몸통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만 해도 한 달에 100~200건이었던 보이스피싱 실제 피해건수가 올 들어 매월 600건 대로 급증했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액은 8,600건, 860억원에 달한다. 사기 수법도 "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금을 환급해준다", "아이를 납치했다", "은행 거래가 중지됐다" 등으로 다양하다.
최근에는 발신번호를 우체국 전화번호로 위장한 뒤 우체국 직원을 사칭한 전화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에 접수된 우체국 사칭 건수만 최근 3개월동안 10만건이 넘었다.
특히 주민번호와 이름 등 개인정보를 먼저 알고 유인 전화를 걸어오는 것으로 파악돼 중국 해커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이 보이스 피싱 범죄로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급기야 경찰청이 5월부터 2개월동안 집중적인 단속을 벌여 45건, 147명을 붙잡았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격이다. 검거된 147명은 중국인 92명, 한국인 42명, 대만인 12명 등으로 대부분 단순 인출ㆍ송금책이었다.
보이스 피싱 범죄는 중국 현지의 몸통 조직이 국내로 사기 전화를 걸어 타인 명의의 대포통장으로 계좌이체를 유도한 뒤 국내로 잠입한 인출책이 은행에서 수거해 가는 식인데, 경찰이 단속을 해봐야 깃털만 붙잡는다는 얘기다.
보이스 피싱 전담수사대 관계자는 "국제 전화를 추적해도 중국의 통신회사 이름 정도밖에 알 수 없다"며 "인출책들도 점조직화 해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중국ㆍ대만의 폭력조직이 개입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범행 단서를 찾지 못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 대만에 거점을 둔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의 주 타깃이 된 데는, 중국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재중동포를 쉽게 구할 수 있고 한국이 인터넷 전화망 등이 잘 구비돼 있다는 점이 주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한국인도 중국으로 건너가 재중동포를 고용해서 범죄단을 구성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계좌이체를 유도하는 전화는 모두 사기라고 보고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日도 보이스피싱 골머리… 박멸 액션플랜·피해자 구제法 도입
일본에서도 '보이스 피싱'이 극성이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보이스 피싱' 사기는 모두 9,874건으로 집계됐다. 피해 액수만 137억5,000만엔(1,293억원)에 이른다.
일본 경찰은 이런 추세라면 사상 최악이던 2004년(2,670억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검거률은 10%대에 불과하다.
특히 올해 들어 세금ㆍ연금 환급 사기가 늘고 있는 추세다. 휴대폰을 통해 피해자를 현금지급기로 불러낸 뒤 가르쳐주는 번호를 누르면 환급 받을 수 있다고 속인다. 들뜬 마음으로 시키는 대로만 번호를 누른 피해자는 한참 지나서야 자신의 예금을 범인 계좌로 이체한 줄 알게 된다.
급증하는 사기를 막기 위해 법무성과 경찰청은 최근 '박멸 액션플랜'까지 만들었다. 현금지급기 앞에서 아예 휴대폰 통화가 안 되도록 하고,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한 범인들이 출금하지 못하도록 현금지급기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로 얼굴 확인이 불가능한 사람은 이용을 제한토록 할 방침이다.
또 신속한 피해자 구제를 위해 6월부터 보이스 피싱 범죄 계좌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60일이 지나도 예금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금융기관이 피해자의 신청에 따라 예금을 돌려주는 '계좌이체사기 피해자 구제법'도 새로 도입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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