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계철학대회/ 철학도 정훈, 윤리학 권위자 팀 스캔론에 묻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계철학대회/ 철학도 정훈, 윤리학 권위자 팀 스캔론에 묻다

입력
2008.07.30 09:19
0 0

30일부터 일주일간 서울대에서 열리는 제22차 세계철학대회 개막에 맞춰 세계적인 철학자들이 속속 한국을 찾고 있다. 첫날인 30일 윤리학 분야 토론에서 ‘비난’을 주제로 발표하는 팀 스캔론(68) 미국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는 동료교수였던 존 롤스(1921~2002)에 버금가는 윤리학과 정치철학 본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현재 미국 코넬대에서 철학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후배 철학도 정훈(28)씨가 철학공부의 의미, 자유와 평등의 관계, 시민불복종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스캔론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정훈=한국에서는 최근 많은 학생들이 인문학, 자연과학 같은 기초학문 분야보다는 경영학, 의학, 법학처럼 실용적인 학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철학의 위기, 인문학 위기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 시대에 철학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스캔론=철학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와 같은 물음이 아니라 “인생이란 무엇인가” “도덕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다. 공부하기에 쉽지않은 분야이지만 철학은 각 분야의 학문들이 전제하고 있는 근본가정에 대해 외부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가령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종교가 답할 수 있을까.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모든 학생들에게 철학적인 문제가 노출돼야 한다. 하버드대에서는 윤리학 또는 정치철학 과목을 꼭 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정훈=세계철학대회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 지금까지 서구 철학계에서는 동양철학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아닌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스캔론=철학은 그동안 언어권에 따라 구분돼왔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만이 단절돼 있었던 것은 아니고 미국철학과 대륙철학의 교류 역시 단절돼 있었다. 동ㆍ서양 철학은 자신의 고유한 분야에 맞는 문제와 방법론을 개발하게 되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이동의 제한이 사라지면서 양쪽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기존에는 서로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비슷한 문제의식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구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인간 삶의 조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동양과 서양 모두 서로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인 보스턴에서 이 대회가 열렸을 때(1998년)는 참가하지 않았으나, 서울에서 열린다고 해서 만사를 제쳐두고 날아왔다.(웃음)

정훈=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라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인가. 공정한 절차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이라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보는가.

스캔론=불평등은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불평등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내가 불평등을 비판하는 이유는 불평등이 정치ㆍ사회체제의 부정의(不正義)함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만연은 그 체제가 불공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다. 불평등은 자유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불평등이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이유는 그런 불평등이 우리가 가진 자유들을 침해하고 훼손하기 때문이다.

정훈=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 두 가치가 서로 갈등할 때 이를 조정하는 합리적인 원칙이 있는가.

스캔론=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대립한다고 보는 구도는 두 가치에 대한 너무 단순한 이해가 아닐까. 두 가치가 갈등할 때 이를 조정하는 합리적인 원칙을 찾는 일보다는 왜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지, 자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이해가 선행돼야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에게 상호보완적인 가치다. 누구나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평등이 필요하고 누구나 평등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정훈=불평등 문제가 나와서 묻겠다. 서구에서는 요즘 이 모델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스웨덴 같은 북유럽식 사회복지국가 모델을 대안으로 꼽는 사람이 꽤있다. 당신은 이 모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캔론=개인적으로는 이 모델에 대한 적극적인 찬성론자다. 한 체제가 공정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구성원의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복지정책을 통해 구현될 수 밖에 없다.

정훈=최근 서울에서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수입 문제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이를 시민불복종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는? 시민불복종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스캔론=이 세상에 완벽하게 정의로운 정치체제는 없지만 한국과 미국은 모두 충분히 정의로운 정치체제를 갖췄다고 본다.

시민불복종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처럼 극심한 부정의가 있어야 하고, 다른 대안이 없어야 하며, 참여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강제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그 정도로 부정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훈=만일 정부 정책결정과정이 불투명하거나 정보를 통제한다고 해도 시민불복종은 정당화될 수 없는가.

스캔론=정부의 투명성 문제로 시위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이므로 시민불복종이 어느 정도는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투명성이 어느 정도나 문제가 되는지 고려해야 한다. 투명성의 문제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에서 자주 제기된다. 국가안보와 관련됐다면 투명성은 어느 정도 제한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해도 그 정책 결정의 정치적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돼야한다. 가령 이라크에 미군을 파견하기까지 정치적 결정과정은 공개돼야 하지만, 무기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까지 투명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정훈=사회정의와 공공질서라는 두 가치가 충돌할 때 당신은 어느 편을 들 것인가.

스캔론=나는 표현자유에 대한 강력한 옹호자다. 많은 정부들이 공공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 할 때는 그 표현이 가져올 위험을 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옹호돼야 하나 폭력을 수반할 때는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폭력이 수반될 때는 제한도 정당하다고 본다.

● 세계철학대회 논쟁거리

5년마다 열리는 세계철학대회는 각국의 철학자들이 지적훈련을 통해 벼려온 자신의 논리를 선보이는 '사상의 경연장'이다. 몸과 마음의 문제에서부터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관계까지 이번 대회에서 논의될 철학적 쟁점들을 정리했다.

■ 세계화와 민족주의는 공존 가능할까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ㆍ사회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세계화와 민족주의를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보완이 가능한 관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알렉산드르 추마코프 모스크바 국립법학아카데미 교수는 철학자들이 문화간 충돌을 완화하고 이해를 높이는 교량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공존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도 민족주의와 세계화의 관계를 개인주의와 이타주의의 공존에 비유했다. 개인주의를 상징하는 아파트에 살지만 이웃집에 우환이 생기면 돕는 일이 생기듯 민족주의와 세계화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보편적인 도덕원칙은 존재하는가

'안락사와 낙태는 어느 상황에서도 용인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연과학의 법칙처럼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의 기준이 있다고 보는 도덕적 실재론과, 도덕적 기준이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도덕적 비실재론 간에 갈라진다.

'살인을 하지 말라'는 객관적 도덕기준이 자연에 존재한다고 보는 도덕적실재론의 입장에서 안락사와 낙태는 용인할 수 없다.

도덕적 비실재론의 경우 도덕적인 판단이란 마치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상처럼 주관적인 호불호의 표출에 불과하다고 본다. 도덕적 판단 근거는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 심리학ㆍ사회학 현상을 자연법칙으로 설명가능한가

기존에 정신적이라고 하는 것들을 모두 물질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는 물리주의자들은 심리학ㆍ사회학ㆍ경제학 등 특수과학도 모두 물리학 법칙과 같은 보편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신뢰하는 김재권 미 브라운대 석좌교수는 대표적 물리주의자다. 반면 제리 포더 미 럿거스대 교수는 물리학 법칙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심리학만의 고유한 법칙이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심리학의 중요한 분석대상인 '고통'의 경우 물리주의자들은 인간과 개와 로보트가 모두 느끼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반대자들은 이것이 각기 다른 기반으로 성립된 감정이므로 일관성을 요구하는 자연과학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정리=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