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東)과 서(西)의 지성이 서울에서 만난다.
철학자들의 올림피아드로 불리는 제 22차 세계철학대회가 30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서울대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5년마다 열리는 세계 지성계의 최대 행사로 한국은 5년 전 터키에서 열린 제 21차 대회에서 서양철학의 원조격인 그리스를 제치고 주최권을 따냈다. ‘오늘날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대회에는 104개국에서 온 2,500여명의 철학자들이 참석해 54개 분과에서 478개의 소규모 토론을 진행한다.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대회가 열린 후 108년 만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 대회는 단순히 서울에서 열린다는 것뿐 아니라 세계철학의 외연을 넓힌다는 상징성도 강하다. 유ㆍ불교철학으로 대표되는 동양철학을 철학이라기보다는 종교로 봤던 서양철학계가 앞으로는 ‘동양철학’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대회 최초로 유교철학, 불교철학, 도교철학이 소규모 토론주제로 마련됐다.
지금까지의 세계철학대회가 독일ㆍ프랑스 등 유럽철학자들 위주로 진행됐다는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호주, 아시아, 남미의 철학자들을 대거 초청한 것도 눈에 띈다. 2001년 사망한 존 롤즈와 윤리학과 정치철학분야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팀 스캔론 하버드대 석좌교수, 지구적 인권문제에 대해 주목할 만한 글들을 발표하고 있는 프레드 달마이어 노틀담대 정치학과 교수 등이 대회를 찾는 대표적인 미국 철학자들이다.
첫 방한으로 기대를 모았던 미국 페미니즘의 기수 주디스 버틀러 버클리대 교수는 영상강의로 대신하기로 했다. 유럽철학자 중에서는 “현대사회의 위기는 이성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성비판에 대해 강력한 반론을 펼치는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트르담대 교수, 정력적인 철학 대중화 노력을 펴고 있는 사이먼 블랙번 캠브리지대 교수 등을 주목할 만하다. 요하네스 아켄다(콩고), 엔리케 뒤셀(멕시코), 이마마치 도모노부(今道友信ㆍ일본), 뚜웨이밍(杜維明ㆍ중국), 팜 반둑(베트남) 등 아시아의 유명 석학들도 자리를 빛낸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한국의 철학’을 주제로 한 특별 심포지엄이 열려 씨알사상연구소 주축으로 함석헌ㆍ유영모의 사상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87년 이후 국내에서 전개된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은 ‘한국민주주의와 철학’ 논문 발표도 외국 학자들에게 한국사회의 발전과 딜레마를 소개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현 대회조직위원장은 “전 세계에서 모인 철학자들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성찰함과 동시에 21세기 철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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