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 쾅쾅.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갑자기 폭우로 돌변했다. 산길이 질퍽거리고 옷이 흠뻑 젖자 어머니의 말문이 열렸다.
“울 아들 (손)태진이가 시합에 나가면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예. 그럴 때마다 부처님께 기도합니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혹시 제 아들이 잘못한 게 있다면 벌은 제가 받겠심더. 제 목숨이라도 바칠 테니 우리 아들 다치지 않게 해주이소. 우리 아들 평생 꿈인 올림픽 금메달도 따게 해주이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위해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치겠다고 했다. “아들 메달 때문에 엄마가 목숨을 바쳐요?”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돌아왔다. “태권도 시합에서도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가 있죠? 불공도 마찬가지라예. 금메달만 달라고 떼를 써서야 되겠심니꺼?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죠.” 화끈한 성격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조용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겠죠.”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남자 68㎏급 금메달 1순위 손태진(20ㆍ삼성에스원)의 어머니 김정숙(45)씨와 아버지 손태용(46)씨. 이들은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26일 울산과 양산 경계에 위치한 정족산 대성암을 찾아 불공을 올렸다. 대성암은 손태진의 외삼촌 원진 스님이 터를 닦은 사찰. 유독 외삼촌을 닮은 손태진이 평소 부모와 함께 찾아 치성을 올리던 곳이다.
불공을 마친 부모는 원진 스님을 만났다. “오빠도 우리 태진이 금메달 따게 해 달라고 기도 좀 해라!” 대답 대신 은은한 미소가 돌아왔다. 염화시중이랄까? “태진이는 지가 알아서 잘 할끼다. 니는 기도하러 안 와도 된다. 기도는 그만했으면 됐으니 주위에 덕을 베풀어라.”
손태진을 낳고 기른 이야기,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등이 쏟아졌다. 당당하던 여장부는 아들을 키우는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렸다. “아들 목소리만 듣고도 아픈 데가 어딘지 걱정이 뭔지를 아는 게 엄마라예.” 갓난아이 때부터 말문이 늦게 트여 걱정이 많았던 탓인지 눈시울이 젖었다.
원진 스님은 조카에게 숙제를 내줬다. “매일 자기 전에 30분간 명상을 하라.” “잘 될수록 주위 사람에게 잘해라.” “말을 아끼고 행동을 조심하라.” 운동을 열심히 해서 금메달을 꼭 따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지만 아들을 위해 불공을 올린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하루 일과를 마친 부모는 해질녘이 되자 정족산에서 내려갔다. 집이 있는 경북 경산까지 가는 길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 태진이 잘 될까예? 요즘은 부담이 될까 봐 전화도 못한다 아임니꺼.” 아들은 태릉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지만, 부모는 멀리서 아들을 응원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 "태진아 너의 꿈 금메달 꼭 따오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들 태진아!
무더운 날씨에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구나. 올림픽까지 딱 10일 남았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더 중요하겠지. 네가 시합에 나가면 엄마는 '우리 태진이가 다치면 어떡하나' '우리 태진이가 지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믿을 건 부처님밖에 없다는 생각에 기도만 열심히 할 뿐이다.
"혹시 제 아들이 잘못한 게 있다면 벌은 모두 제가 받을겠습니다. 목숨이라도 바칠 테니 우리 아들 올림픽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자식을 위해선 어떤 것이든 바칠 수 있는 게 대한민국의 엄마란다. 밤이면 항상 네가 보고 싶다.
내 아들 태진아! 엄마, 아빠는 네가 베이징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할 거라고 믿는다. 우리 태진이 잘할 수 있지? 금메달만이 너를 위해 애써주신 감독님과 동료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최선을 다해보자.
오늘도 열심히 훈련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겠지? 국민의 성원에 꼭 금메달로 보답해다오. 네 꿈이 이뤄지길 오늘도 부처님께 기도한다. 사랑하는 아들, 사랑해! 파이팅!
-대성암에서 엄마가
양산=이상준 기자 jun@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