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치열하다. ‘방송전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시청자들에게 좀더 좋은 방송을 제공하기 위해 애써야 할 사람들이 엉뚱하게 이 전쟁에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으니 답답하다. 앞으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전쟁을 해야만 하는가?
2006년 10월 이 지면에 썼던 칼럼 제목을 다시 쓰면서 같은 주장을 반복하게 된 것에 대해 독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위와 같은 물음에 답하는 동시에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칼럼을 이렇게 시작했다.
공정성 내세운 방송장악 갈등
“1987년 6월항쟁 이후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20년간 계속돼 왔다. 처음 10년간 공영방송 노조는 일일이 세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파업을 했다. 개혁ㆍ진보 세력은 방송노조의 투쟁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다음 10년은 모든 게 뒤집어졌다. 그간 공정성을 생명처럼 여기던 지식인들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공정성 문제에 대해 입을 닫았다. 자기들이 원하는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제 공정성은 보수파의 신앙이 되었다. 만약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떻게 될까? 공정성 문제에 입 닫고 살던 사람들은 계속 입을 닫을까? 공정성을 외치던 보수파는 계속 공정성을 외칠까?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그건 당파성인가? 내 맘에 들면 모른 척 하고 내 맘에 안 들면 문제 삼아야 하는 그런 것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공정성을 둘러싼 이 얄팍한 정략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이어 나는 나부터 반성한다고 밝히면서 정치권도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모두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이 문제에 정직하게 대응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방송을 권력으로부터 완전 독립시키는 대원칙에 합의하자고 제안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공정성 갈등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은 지금이 딱 좋은 시기다. 한 세대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절호의 기회다. 여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으면 여당이 목숨 걸고 반대하겠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다. 방송을 시민사회에 돌려주자. 가칭 ‘방송의회’를 구성하자. 방송위원회 위원과 공영방송사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방송의회에 넘겨주자. 행여 돈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방송의회를 구성하는 방송의원은 교통비조차 받지 않는 완전 무보수 명예직이다. 방송의원 규모는 사회 각계를 대표하고 외부 압력과 로비를 거의 무의미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게끔 수천 명으로 하자.”
물론 노무현 정권은 방송을 시민사회에 돌려주지 않았다. 시늉조차 내지 않았다. 노 정권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정권 재창출만 꿈꾸었지,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갈 경우에 대비한 제도적 변화를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애국적 결단을
결국 한나라당은 집권을 했지만, 아직 방송을 장악하진 못했다. 장악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권만 특별히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이해하기엔 그 방법이 너무도 졸렬하고 천박하다. 방송 요직을 전리품 취급하는 것도 정도 문제지, 해도 너무 한다.
이명박 정권은 방송 중립화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노 정권의 못난 점을 뛰어넘음으로써 역사적 업적을 남기는 동시에 국민적 지지를 받겠다는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방송을 장악하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릴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방송의 중립화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함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던 노 정권을 능가하라는 것이다.
방송을 눈만 뜨면 싸움질하기에 바쁜 정치권의 대리전쟁터로 만들거나 볼모로 잡아두는 건 우리 모두의 자학(自虐)이다. 우리 사회의 중립적 영역을 넓혀가지 않는 한 한국은 내부 당파 싸움에 역량을 소진시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애국적 결단을 촉구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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