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시즌 개막 후 한 달쯤 지난 후의 일이다. 잠실 3연전 첫 경기를 앞두고 삼성 선수단이 좌측 담장 앞에서 미팅을 가졌다. 팀 성적도 신통치 않았던 터라 코치들은 저마다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수비코치였던 필자도 한마디하려던 차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양준혁이 눈에 들어왔다. 필자는 미팅 후 양준혁을 따로 불렀다. “너, 나랑 내기하자.” 양준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내기 말입니까?” “네 타율은 시즌 후 무조건 3할에 타율이 맞춰져 있을 거야.” 양준혁은 어이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지금 2할도 겨우 치는데 어떻게 3할을 맞춥니까?”
양준혁과 내기 후 필자는 다른 선수들을 향해 외쳤다. “선수 여러분, 모두 각자의 그릇이 있습니다. 지금 못한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시즌 후 여러분의 성적은 그릇만큼 나오게 돼 있어요. 단 열심히 한다는 조건 하에서 말입니다.”
필자의 예언(?)대로 그 해 양준혁은 3할2푼8리로 시즌을 마쳤다. 타격코치도 아니었던 필자가 양준혁의 3할을 장담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양준혁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양신(梁神)’ 양준혁이 올시즌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타율은 2할대 중반밖에 안 되고, 시즌 초에는 93년 입단 후 사실상 첫 2군 추락의 수모까지 당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브라운관에 비치는 양준혁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한 것 같다. ‘신’으로 불리는 그도 타격부진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11년 만에 양준혁과 다시 내기를 제안한다. 남은 경기가 적어 3할까지는 어렵더라도 시즌 후 양준혁 타율은 지금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다. 양준혁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도 드물다. 마흔 살이지만 내야땅볼을 치고 1루까지 전력으로 달려가는 양준혁의 모습에서 무한한 감동마저 느껴진다. ‘양신’이 그릇대로 되리라 믿는다.
전 KIAㆍ삼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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