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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시리즈의 신기원 '다크나이트'세 캐릭터로 영화 풀어보기

입력
2008.07.2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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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절돼 일렁이는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전경(오프닝 타이틀)이 사라지면 푸른색 화염이 스크린을 덮친다. 영화의 시작은 그렇게 음향 없이 시선을 빨아들이는, 몇 초 동안의 타오르는 정적으로 채워진다.

푸른 정적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 모르겠지만, 배트맨 시리즈에 씌워진 오락영화 이미지를 정화하는 구실을 한다. 방탄수트와 배트카로 무장한 슈퍼히어로를 ‘즐기러’ 온 관객은 먼저 이 불꽃으로 두뇌를 좀 헹궈내야 한다.

아니면 잿빛 도시에서 펼쳐지는 음울한 묵시록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당황도 곧 전율로 뒤바뀐다. 영화는 선과 악, 영웅과 악마를 서로 배전(背轉)시키며 굵고 스피디한 리듬을 분출한다.

그 리듬에 현란한 액션이 조밀하게 얽혀 들어가고, 인간의 본성이 언듯번듯 속살을 드러낸다. 이 단단한 블록버스터의 제목은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다. 세 캐릭터를 통해 영화를 들여다본다. 8월 6일 개봉. 15세 관람가.

■ 카오스, 그 치명적인 매혹-조커

1989년 팀 버튼 감독은 <배트맨> 을 통해 그로테스크하면서 동시에 코믹한 악당 조커(잭 니콜슨)를 탄생시켰다. 19년이 흐른 뒤, 조커는 히스 레저라는 배우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악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새 조커는 악당의 면모-영리함, 치밀함, 잔혹함 등-를 두루 갖추고 있지만, 결코 악당의 전형성 속에 가둘 수 없는 존재다.

조커는 돈에 초연하고 자신이 최고임을 증명하려는 현시욕에도 관심이 없다. 다른 범죄영화의 사이코패스처럼 방향 없는 살육에 탐닉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 새로운 조커에게 ‘악당’이라는 호칭은 격에 맞지 않는 면이 있다.

조커는 순수한 악(惡)을 추구한다. 그것은 사회적 증오의 대상으로서 악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추상한 악의 절대개념에 가깝다. 죄수와 피란민을 두 배에 나눠 싣고 어느쪽이 먼저 상대방의 배에 장착된 폭발물을 터뜨리는지 지켜보는 조커의 눈빛에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피에로처럼 분칠한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두르고 있지만, 조커는 괴테의 <파우스트> 속 메피스토나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 에 등장하는 악마와 비슷한 존재다. 찢어진 입술을 연신 핥아대는 히스 레저의 귀기 서린 연기가, 조커의 표정에 혼돈(카오스)의 심연인 듯 어둑한 깊이를 불어 넣었다.

■ 연약한 영혼의 슈퍼히어로-배트맨

배트맨 시리즈가 염세적 색체를 띠는 것은 역설적으로 주인공 배트맨의 성격 때문이다. 정의감이 아니라 개인적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영웅 노릇은, 박쥐 가면 뒤에 고독과 불안을 감춘 채 어두운 도시를 헤매는 무법자의 이미지로 배트맨을 각인시켰다.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이번 배트맨도 도덕률보다는 자기강박에 의해 작동되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그에겐 도시를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배트맨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면, 네 곁에 있어줄게”라는 옛 연인의 지키지 못할 약속이 무겁다.

초능력에 가까운 힘을 부여하는 첨단 장비를 지니고도, 그가 조커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커와 1대 1로 대결하는 치킨게임(마주보고 달리다가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게임)에서, 결국 핸들을 꺾는 건 배트맨이다.

그 장면은 ‘악당의 목숨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유의 정의감으로 읽히지 않는다. 도덕이라고 이름 붙여 놓은 관념들이 악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은 우울하지만 정직하다. 섬약한 배트맨의 존재는 결국 조커의 카리스마를 되비치는 거울이다.

■ 정의라는 이름의 위선-하비 덴트

팀 버튼의 원작에 비해 가장 비중이 커진 역할은 고든시티의 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다.(<배트맨 비긴즈> (2005)가 이전 <배트맨> 시리즈 전체의 프리퀄-전편의 시점(時點)을 앞서는 내용의 속편-이라면, <다크나이트> 는 시리즈의 리메이크로 볼 수 있다.) 법이 부여한 권력과 시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그는 악당을 척결해 나간다.

그는 어둠이 없는 빛과 같은 존재다. 선택이 필요할 때 그가 즐겨 던지는 동전은 사실 앞면만 두 개. 그는 스스로를 무결한 정의로 여긴다.

그러나 그 자신만만한 단면성은 조커라는 절대악을 만난 뒤 가장 쉽게 무너진다. 조커에 조정에 의해 하비 덴트는 가장 비열한 악당 ‘투 페이스’로 변신한다. 법의 테두리를 대하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를 구원해야 할 구원자에게는, 언제나 구원의 능력이 없다. 암울하고 염세적인, 그러나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배트맨이 탄생할 수 있었던 우리의 인식, 우리의 세상이다.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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