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15> 장정의 한인들

알림

[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15> 장정의 한인들

입력
2008.07.28 00:19
0 0

오후 늦게 나자핑(羅家坪)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던 ‘조선혁명군정학교’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장정, 나아가 중국 공산당의 역사에는 중국인들만이 아니라 한인들의 피와 땀도 배어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상기하며 양림과 무정에 대해 생각해 봤다. 장정에 참가한 한인은 30여명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대부분 전사하고 살아서 장정을 완주한 사람은 양림과 무정 단 두 사람 뿐이었다.

무정은 양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1905년 함경북도 출신으로 14살 때 3.1운동에 참여했고 1923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보정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당군의 포병장교로 근무했으나 국민당군에 실망해 공산당에 가입한다.

장제스(蔣介石)의 상하이(上海)쿠데타 때 투옥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탈옥하여 펑더화이(彭德懷)의 포병단장으로 활약했다. 당시 홍군에 대포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펑더화이와 무정뿐이었다.

장정 후 무정은 조선의용군을 만들어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그리고 해방 후 북한으로 돌아갔다. 김일성이 지배하는 북한에서 포병총사령관을 지내는 등 북한군의 요직을 거쳤으나 행복하지 못했다. 그는 1951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7회ㆍ진사강을 건너라>에서 소개한 바 있는 양림은 1898년 평안북도 출신으로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해 윈난(雲南)육군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필사적으로 항일을 하겠다는 뜻에서 ‘필사적’의 중국어 발음(삐스더)와 비슷한 삐스디(毖士梯)를 중국이름으로 정했다. 졸업 후 중국공산당에 비밀리에 가입한 뒤 난창(南昌)봉기 등에 참가해 능력을 인정 받았다.

중앙지도부를 경호하는 최정예 부대인 군사위원회 간부단의 참모장으로 장정에 참여했고 진사(金沙)강 도하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그는 장정을 끝낸 넉 달 뒤인 1936년 2월 황하를 건너는 동진작전에서 특공대를 직접 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을 맞고 38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 옌안의 한인(1): 김산

장정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옌안(延安) 하면 떠오르는 한인이 있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다.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인 에드거 스노의 부인인 님 웨일스가 중국 공산당을 취재하기 위해 1937년 옌안에 왔다가 도서관에서 수준 높은 영어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있어 수소문해 만난 것이 바로 한인 혁명가로 이곳에 와 있던 김산이었다.

웨일스가 만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쓴 김산은 본명이 장지락으로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와 베이징에서 의학공부를 하다 좌익 서적을 읽고 사회주의에 경도됐다.

1925년 중국 공산당원이 됐으나 1930년대 두 차례나 일본경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끝내 아무런 자백을 하지않아 풀려난다. 그러나 이렇게 석방된 것이 오히려 의심을 사 당에서 축출되는 등 시련을 겪은 그는 1936년 소수민족 해방전선을 창설하고 옌안지역에 만들어진 소비에트지구에 조선혁명가 대표로 와 있었다.

유학시절 <아리랑>을 읽고 감동을 받았지만 이후 학교공부와 먹고 사는 일로 그를 잊어버린 사이 그의 책은 한글로 번역되어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다. 그리고 그가 중국공산당에 의해 숙청당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안타까웠다.

2005년 노무현정부가 사회주의계열에 대해서도 항일투쟁 등을 인정하기로 함에 따라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뒤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의 흔적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장정을 떠나오면서 그의 아들인 가오융광(高永光)씨를 만났다. 공대를 졸업하고 국가경제위원회 기술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은퇴했다는 가오씨는 1937년 1월 생으로 70살이 넘었다.

키는 작지만 단단한 몸매에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김산이 죽은 뒤 한족인 김산의 부인은 재혼을 했다. 가오씨는 새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이다.

- 사진을 보니 아버님은 키가 크던데 선생님은 키가 작으시네요

“그래요.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 키는 180cm가 넘었다는데. 어머니 키가 작아요.”

-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으실 것이고, 어머님은 어떤 분이었어요

“허베이(河北) 출신으로 학생회장을 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고 그러다가 아버지를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강한 분이었지요.”

- 아버지가 김산이라는 것은 언제 알았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조선족이라는 느낌은 받았어요. 그러다가 대학생이 된 뒤에야 아버지가 조선족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이야기해줘서 확실하게 알게 됐어요.”

- 아버지에 대한 책인 <아리랑>을 언제 처음 봤습니까?

“1970년 당시 옌벤(延邊)의 조선문제연구소장이라는 분이 홍콩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이 책을 보고 구입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후예가 있는지 찾아 나섰는데 연배 분들이 살아 계셔서 어머니를 찾아 왔었어요. 그 때 그 분들이 책을 갖고 와서 봤는데 가슴이 뭉클했지요. 그리고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어요.”

- 아버지는 복권이 언제 됐나요?

“복권을 신청할 준비를 해 놓았다가 1980년대 초에 해서 곧 복권됐어요. 1997년 아버지의 흔적을 찾으러 옌안에 가서 찾아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2005년 아버지의 훈장을 받으러 한국에 갔었는데 공산주의자인 아버지를 인정해줘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뿌리를 생각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여행을 준비하면서 충격을 받은 것은 김산이 웨일즈를 만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마오의 베리야(스탈린의 비밀경찰 대장으로 무자비한 숙청으로 악명이 높았다)라고 할 캉성(康生)에 의해 바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숙청당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책도 나오기 전에 죽은 것은 몰랐다. 김산은 웨일즈와 인터뷰당시 자신이 만주에 가 독립운동을 할 것이니 신분보호를 위해 2년간 출간하지 말 것을 부탁해 <아리랑>은 1941년 처음 출간됐다.

다시 말해, 자신의 책이 출간됐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그것도 일본군의 총알에 의해서라 아니라 혁명동지들의 총알에 의해서 말이다. 그에 비하면 국민당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양림은 너무도 행복한 편이다.

그의 피는 어디에 흘려져 있는 것인가? 우리가 어제 다녀온 양자링(楊家嶺)의 뒷산인가? 아니면 바오타(寶塔)산의 구덩이인가? 마오쩌둥(毛澤東)은 그의 처형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는 먼 이국 땅에서 개죽음을 당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조국의 운명처럼 나의 삶은 패배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단 하나에서는 승리하고 있다”던 그의 말이 생각나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산, 잘 가시오.

■ 옌안의 한인(2): 조선혁명 군정학교

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이 나자핑에 도착했다. 그러나 개발 붐으로 이미 사방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또 아파트를 짓고 있어 옛 모습을 서술한 책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수소문 끝에 작은 다리를 찾아냈는데 앞에 ‘나자핑’이라는 돌 팻말이 서 있었다. 다리를 건너가자 양쪽에 지저분한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왼쪽으로 한 노점상이 팔려고 쌓아놓은 물건들 사이로 비석이 하나 보였다. 바로 우리가 찾고 있던 ‘조선혁명군정학교 기념비’였다. 독립운동의 중요한 유적이건만 아무도 찾지 않고 돌보지도 않아 노점상의 창고로 변한 모습에 서글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노점상들이 주섬주섬 물건들을 치웠다. 기념비에 쓰인 내용은 조선혁명군이 1944년 3개월간의 행군 끝에 이곳에 도착해 학교를 지어 12월 완공했고, 45년 2월 주더(朱德)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교식을 했으며, 김두봉이 교장을 지냈고 1945년 8월 하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북조선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학교 터와 숙소역시 폐허가 되어 있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