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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적을 부르는 뇌' 뇌, 스스로 치유하고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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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적을 부르는 뇌' 뇌, 스스로 치유하고 변화한다

입력
2008.07.2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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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도이치 지음ㆍ김미선 옮김 /지호 발행ㆍ480쪽ㆍ2만3,000원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배어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버린 듯한 날” 제 7회 천상병 문학상을 수상한 김신용 시인의 <환상통> 이다. 실재하지 않는 감각을, 뇌가 실제적인 것으로 인지하는 까닭이다. 과학이 미처 발달하지 못했던 18세기, 유럽에서는 그를 가리켜 “발신지가 없는 통증”이라며 “영혼의 존재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라고 까지 했다.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95%가 바로 그 비실재적 고통으로 괴로워 한다. 자궁을 들어낸 뒤에도 생리통을 겪는 여성, 직장을 제거한 뒤에도 만성적인 직장통과 치질통에 시달리는 사람, 방광을 제거했는데도 다급하고 고통스럽게 요의(尿意)를 호소하는 사람 등 내부 기관의 절단에 의한 환상 통증의 예들은 뇌의 신뢰도에 대한 회의까지 불러온다. 음경의 암으로 음경을 절제한 일부 남성은 ‘환상 발기’까지 경험한다. 그 중에서 최악은 “(수족이 절단돼)긁을 수도 없지만, 환상 손에서 가려움을 느끼”(239쪽)는 경우이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증상의 갖가지 유형들이 자신의 회로 속에 이미 깊숙이 배선(hardwired)돼 있는 것으로 뇌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져 왔다. 뇌는 변경 불가능하게, 완전히 굳어진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일단 손상된 뇌는 회복 불가하며 교체될 수도 없다는 통념은 그 같은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뇌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심각한 뇌 질환을 스스로 치유하기도 한다”고 말해, 뇌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잇달아 보고되고 있는 ‘뇌가소성(neuroplasticityㆍ혹은 신경가소성)’ 현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임상학적으로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뇌 안에는 특정 처리 능력이 나뉘어져, ‘뇌 지도’가 형성된다. 때문에 손상된 뇌일지라도 특정한 처리 영역을 훈련하고 뇌를 재설계, 사고력과 지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영구 배선된 것이 아니어서, 마치 찰흙이나 플라스틱처럼 변형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궁절제술을 받으며 항생제를 남용,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물체를 인식하지 못해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환자가 있었다. 그러나 물체의 영상을 인지하는 기구가 부착된 모자를 쓰고, 144개의 전극을 심은 플라스틱 감지기를 혀에 살짝 밀착시키자, 균형 감각이 되살아 나 조금씩 걸을 수 있었다. 인간은 눈이 아닌 뇌를 통해 본다는 가설을 입증한 이 실험은 선천적인 맹인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결과로 이어져, <네이처> 지를 장식했다.

“산부인과 의사가 태아의 팔 다리를 임의적으로 확 잡아 당긴 게 틀림없다”는 농담을 들을 만큼 신체는 물론 지능까지, 모든 것이 비대칭적이었던 어느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그러나 뇌가소성 덕에 장애아들의 비언어적인 단서들을 포착하는 데 천재성을 발휘, 결국 훌륭한 교사(뇌가소치료사)가 됐다.

태중에서 산소 부족으로 두뇌의 좌반구 밖에 없는 여성의 경우를 보자. 그러나 그녀는 우뇌가 뇌가소성 작용에 따라, 뇌를 재조직하고 좌반구의 일과 기능을 옮겨 놓은 까닭에 정상 생활을 한다. 각 반구가 자신의 활동을 알려주는 전기 신호를 보내, 상대편의 발달이 다듬어지는 것을 도와주므로, 둘은 조화로운 방식으로 기능하는 까닭이다.

책에는 두뇌 과학 실험의 독특한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두개골을 연 환자(피실험자)의 반응을 체크해 가며 수술을 하는 장면, 섬세한 뇌에서 단 한 지점의 위치를 정확히 집어내기 위해 며칠에 걸쳐 전극을 500번 꽂아야 했던 사례 등이다. 이 책은 그러므로 “극한의 인내를 요구하는 수술을 수천 번 반복한”(75쪽) 여러 과학도가 흘린 땀의 결과다.

“인간은 자연이 낳은 사이보그다.”(47쪽) 인간의 기능을 컴퓨터 등 전자 기계와 자연스럽게 비유하게 해 주는 뇌가소성의 논리를 밀고 나가면, 저 같은 명제가 자연스레 얻어 진다. <뉴욕 타임스> 의 베스트셀러로 꼽힌 이 책은, 2007년 아마존에 의해 최고의 과학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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