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동 중곡종합복지관 4층 강당. 헐렁한 셔츠, 펑퍼짐한 청바지 차림이지만 날렵한 몸매가 돋보이는 20대 청년이 인기 소녀그룹 '원더걸스'의 '소핫'에 맞춰 어린이 10여명과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수시로 춤을 멈추더니, 어느새 아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바로 잡아 주는 ‘강사’로 변신한다.
심재경(25ㆍ한양대 생체공학과 4년)씨는 지난해부터 수업이 없는 금요일이나 주말마다 복지관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다. 대상은 초등학생이다. 자신이 회장까지 지낸 한양대 춤 동아리 ‘알스아망디’(Arsamandiㆍ사랑의 예술) 후배들의 도움도 가끔은 받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지도한다.
심씨가 복지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천주교 예수성심시녀회가 운영하는 이 복지관이 2006년 초등생 공부방 프로그램의 하나로 '댄스교실' 과목을 새로 개설했는데, 당시 신씨의 동아리 선배 필감용(26)씨가 무료 자원봉사 강사로 선임됐다. 심씨는 자신을 후계자로 낙점한 필씨에 이끌려 복지관을 찾게 됐고, 필씨가 졸업한 지난해부터는 아이들을 직접 맡고 있다.
심씨는 대학생 신분이지만, 춤 솜씨만큼은 프로급이다. 2005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동아리에 가입했고, 지난 3년간 펼친 공연만 수 백회에 달한다. 2006년에는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추는 안무가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는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연습을 했다. 최신 유행에 뒤질세라 신곡이 나온 댄스 가수들의 동영상을 수소문 끝에 구해 수 십번 돌려봤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연구를 거듭했다.
그의 지단한 노력 때문이었을까.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소극적이던 아이들의 태도가 춤을 배우면서 크게 달라졌다. 학교 장기 자랑시간에 꽁무니를 빼던 아이들이 서로 “연예인을 하겠다”고 나설 정도가 됐다.
학부모들도 “아이들이 자신감이 생기면서 활기가 넘치고, 공부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졌다”고 환영 일색이다. 복지관 사회복지사인 황경란씨도 "춤 뿐만 아니라 고민도 들어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심씨야 말로 참 스승”이라고 칭찬했다.
심씨는 지난 연말 재한 몽골학교와 공동으로 개최한 ‘비추미와 함께하는 우리, 띠앗’이란 문화행사를 잊지 못하고 있다. 자신에게 춤을 배운 아이들에게는 첫 공연이었는데도, 수백 명 관중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성공적인 공연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이 단순히 춤을 배운 게 아니라, 춤을 통해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여유도 배운 것 같아 너무 기뻤고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1년을 보내면서 보람이 컸던게 사실이지만 걱정도 앞서는 시기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심씨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어 학점관리는 물론이고 대학원 진학 등 준비할 게 너무 많다”며 “아이들을 가르칠 동아리 후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심씨는 “졸업 후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준 뒤에도 수시로 찾아와 아이들의 희망을 싹 틔우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소망했다.
윤재웅 기자 ju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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