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발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 내용 가운데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과 10ㆍ4남북정상선언 관련 사항이 우리 정부의 사후 요구로 최종 문안에서 빠졌다고 한다. 원래 의장성명에는 참석자 다수가 공감한 내용만 포함되는 게 상례다. 정부는 이점을 들어 의장국 싱가포르측에 북한만 언급한 10ㆍ4선언 관련 내용이 의장성명에 들어간 것에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남과 북이 언급한 두 사항을 함께 빼기로 했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금강산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지지하는 발언은 5~6개국 외교장관이 함께 했다”며 “충분한 효과를 봤다는 판단 아래 두 문구를 함께 빼기로 합의했다”고 소개했다. 참으로 어이 없는 변명이다. 정부의 금강산 사건 공론화 공세에 북한은 ‘10ㆍ4 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지속적 발전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맞불을 놓음으로써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이 됐다.
하지만 의장성명 작성 과정에서는 무엇을 하다가 뒤늦게 이미 발표된 문안의 수정을 요구했단 말인가. 차라리 그대로 두는 게 낫지, 불리하니까 뒤늦게 물린 것밖에 더 되는가. 우리 정부의 외교가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가. 국제사회에 창피하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애초 남북 간에 해결할 일을 다자외교 무대로 끌고 간 게 잘못이었다. 북측이 현장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책임을 떠 넘기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긴 했다. 그러나 앞뒤 재지 않고 남북문제를 국제사회로 끌고 가겠다는 생각부터가 낡고 물색 없다. 자칫 실효성도 없이 외세의 간섭만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이번 다자외교 무대에서 금강산 사건을 강조하는 바람에 당초 부각시키려던 아세안 관련 중요 이슈들이 모두 묻혀 버린 점도 큰 마이너스다.
금강산 사건 발생 자체는 물론 진상조사를 통한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깊어진 남북관계 경색 탓이 크다. 따라서 이 사건의 해결은 남북관계 회복이라는 근본적 처방을 통해 접근해야 옳다. 밖으로 끌고 가서 압박을 한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 치밀한 전략 없이 덤비기만 하는 이 정부의 섣부른 외교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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