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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금강산·10·4선언' 뒤늦게 삭제 요청/ 금강산 압박·한국 외교 위신 둘 다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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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금강산·10·4선언' 뒤늦게 삭제 요청/ 금강산 압박·한국 외교 위신 둘 다 잃어

입력
2008.07.2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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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발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 성명에 담긴 10ㆍ4 남북정상선언 지지 내용이 발표 후 뒤늦게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삭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우선 국제 다자외교의 결과물인 의장 성명을 하루 만에 뒤집으면서 외교 결례 논란이 일고 있다. 초반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한 국제 여론몰이에 나섰다가 나중엔 10ㆍ4 선언 지지흐름을 막기 위해 주력한 꼴이 됐다.

특히 10ㆍ4 선언에 대한 거부 시그널을 북한에 보낸 셈이 돼 향후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이명박 정부의 미숙한 외교력이 결국 사고를 쳤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 외교부 당국자들은 "금강산 관련 문구를 ARF 의장성명에 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남북대화 채널이 막힌 상황에서 국제공조를 통해 금강산 사건 진상 규명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21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ARF 전체회의 등 다자외교 석상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과의 양자회담에서도 금강산 문제를 거론해 지지를 끌어냈다.

하지만 24일 밤 뜻밖의 암초에 부딪혔다. ARF 의장국인 싱가포르가 발표한 의장성명에 금강산 관련 문구를 담는 데는 성공했지만 북측의 요구에 따라 10ㆍ4 선언 지지 문구가 함께 담긴 것. 현지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은 심야 대책회의를 여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

우리 정부는 중간에 10ㆍ4 선언 관련 문구가 담기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왜 10ㆍ4 선언 관련 내용을 성명에 넣어서는 안 되는지'를 설득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오전 청와대로부터 심상치 않은 기류가 싱가포르 현지에 전달됐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금강산 문제는 단기적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10ㆍ4 선언 부분은 우리의 대북기조에 족쇄가 될 우려가 있어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밝혔다.

여론도 심상치 않았다. 특히 의장성명에서 금강산 문제는 '관심을 표명한다'로 돼있고, 10ㆍ4 선언은 '강력한 지지를 표명한다'고 돼있어 북한의 외교적 승리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비판 여론이 일자 외교부가 다급해졌다. 이날 서울로 귀국하는 유명환 장관이 현지에 체류 중이던 이용준 차관보에게 10ㆍ4 선언 삭제 지시를 내렸고, 이 차관보는 싱가포르 측에 이런 뜻을 전달했다. 이에 싱가포르 측은 "남북 간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금강산과 10ㆍ4 선언 관련 문구가 성명에서 모두 빠진 것이다.

일단 비판은 '금강산 문구를 넣는 것보다 10ㆍ4 선언을 빼는 게 그렇게 중요했느냐'는 부분으로 집중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ARF 의장성명은 서명도 없고 의장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며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면 왜 정부가 금강산 관련 문구를 담기 위해 주력했는지 설명이 안 된다.

만약 정부가 10ㆍ4 선언 관련 내용이 성명에 담기는 게 부담스러웠다면 사전에 왜 이를 막지 못했는지 의문도 제기된다. 정부의 외교력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번 의장성명 삭제 파문으로 향후 남북관계 운용에서도 부담을 떠안게 됐다. 북한은 그 동안 "6ㆍ15 선언과 10ㆍ4 선언을 남측이 존중해야 남북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11일 국회 개원연설에서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6ㆍ15, 10ㆍ4 선언을 어떻게 이행해나갈 것인지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입장들이 하루 아침에 뒤집히면서 정부의 오락가락 대북정책 기조에 비판이 일고 있다. 전략도, 철학도 없는 외교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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