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생 시절 나와 비슷한 조에 속했던 꼬마들은 대부분 오늘날 바둑계를 흔드는 쟁쟁한 프로가 됐다. 준상이도 그 중 하나다. 안경을 쓰고 똘똘하게 생긴 꼬마가 고사리 손으로 바둑돌을 놓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준상이랑 내가 연구생 6조에 있을 때였다. 둘 중 한 명이 5조에 올라가는 중요한 판에서 맞붙게 됐다. 긴장을 하면 항상 입술을 꼭 깨무는 버릇이 있는 '준상 꼬마'와 대국 도중 오른손 검지를 쉴 새 없이 흔들며 계가를 하는 '민진 꼬마'의 대결로 내가 백이다.
아슬아슬한 반집 승부였는데 종국후 계가를 해 보니 흑이 반면으로 6집을 이겼다. 그렇다면 반집승일까. 유감스럽게도 아니었다. 당시는 덤이 5집반이었다. 내가 반 집을 진 것이다.
난 너무 열 받아서 복기도 안 하고 거칠게 돌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준상이 역시 5조에 올라갔다는 기쁨으로 돌 담는 손길이 무척 빠르다. 잠시 후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바둑판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위로하는 (김)혜민이의 등 뒤로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나가는 준상이가 보인다.
그리고 들려오는 기쁨에 찬 목소리. "엄마! 나 반 집 이겼어." '저 녀석을 그냥….' 연구생 시절 준상이에 대해 남아 있는 가장 또렷한 기억이다. ;
지난 달 강원도에서 열렸던 소소회 연수에서 기사들끼리 재미로 페어 대국 시합을 했다. 준상이랑 나랑 한 편이 됐는데 호흡이 척척이다. 결국 우리가 우승해서 각자 10만원씩 상금을 탔다.
이 정도 팀웍이면 공식 시합에 나가도 되겠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오는 10월에 베이징에서 열리는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에는 개인전에 출전한다. 나중에 기회되면 꼭 준상이랑 한 팀으로 페어 대회에 나가서 메달 하나 따와야겠다.
2007년 이창호 사범님을 꺾고 국수 자리에 오르면서 준상이는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됐다. 얼마 전엔 농심배 국가 대표에도 뽑혔다. 준상이는 바둑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자기 관리가 뛰어나다.
책도 많이 읽고 외국어 공부도 열심이어서 중국어에도 능하다. 언젠가 중국에 갔을 때 줄곧 입을 닫고 있어서 중국어를 못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들 얘기하는 거 다 알아 듣고 있어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홈페이지를 보니 밤마다 팔굽혀펴기 등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단다. 올해 스물한 살인 준상은 요즘 귀도 뚫고 옷도 예쁘게 입고 슬슬 멋을 알아간다.
요즘 젊은 기사들 중에는 지금 당장의 성적에 관계 없이 앞날이 걱정되는 후배가 있고, 알아서 잘 할 것 같은 후배도 있는데 준상이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 같다.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있겠지만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항상 자신을 아끼며 철저한 자기 관리와 따듯한 카리스마로 지금처럼 야무지고 좋은 모습 보여주길.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