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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마름질은 열 번, 가위질은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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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마름질은 열 번, 가위질은 한 번

입력
2008.07.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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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시대, 글로벌 시대,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개인이건 기관이건 국가건 모두 끊임없이 개혁을 요구 받는다. 변화에 제대로 적응한 사회는 선진대열에 합류했고 그러지 못한 사회는 낙오할 수밖에 없다.

1995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기고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10년 여의 시간동안 우리나라는 개인, 사회와 모든 조직이 끊임없이 제도적 변화와 구조적 조정을 겪어왔다. 하지만 경제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으며 선진국으로 비상하기 위한 성장엔진조차 아직 준비되어 있지 못한 것 같다.

조직은 국가건 정부출연 연구기관이건 간에 경영 측면에서 볼 때는 생명체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손가락 끝 극히 작은 부분에 말썽이 생겨도 온 몸의 활동이 지장을 받게 되며 극히 작은 상처라도 잘못되면 큰 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유명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린 상처가 파상풍으로 발전해 사망했다.

조직은 평소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군살 없고 건강한 조직이 유지되도록 노력하여 불연속적이고 갑작스런 조치들이 취해질 필요가 없도록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급격한 환경 변화 또는 조직에 이상 징후가 보이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과 같은 대대적 개혁이 필요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다루듯이 소중하고 세심하게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판단한 후에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가 작은 기관을 경영하며 기관의 개혁에 대해 나름대로 고려하게 된 사항을 몇 가지 제시해 본다.

우선 구성원들 간에 충분한 신뢰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며 덜 과격한 대안은 없는지 검토한다. 환자를 배려하는 의사라면 환자를 안심시키고 수술은 가급적 피할 것이다. 비만환자에 대해 운동요법을 권하지 지방흡입술 같은 극단적 처방은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다.

둘째, 과격한 개혁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 조직이 개혁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가 검토해야 한다. 원기가 부족하다면 기운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술 전 환자는 혈압 당뇨 약물에 대한 부작용은 없는지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한다. 조직의 구조조정에서도 피해야 할 것, 사전에 취할 조건은 무엇인지 충분한 검토와 예방이 전제되어야 한다.

셋째, 개혁주체는 전문적이고 철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느 부분을 수술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환부가 어디고 어떤 부위를 도려내야 하는가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큰 소리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의가 필요하다. 철저히 소독된 수술 도구와 수술실이 필수적인 것처럼 개혁주체의 주변은 깨끗하고 공정한 환경이어야 한다. 공정하지 않은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조정 전보다 사태를 악화시킨다.

넷째, 개혁의 범위를 잘 판단해야 한다. 수술은 최소 부위를 최소한의 피를 흘리며 최단시간에 신속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환부를 남기면 재발하고 필요 이상 도려내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위험까지는 아니더라도 회복이 더디게 된다.

다섯째, 구조 조정 후 적응기 및 후속조치가 중요하다. 수술 후에는 요양을 하며 휴식기를 주어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 구조조정이 끝나자마자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면 그 조직은 스트레스로 인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마름질은 열 번을 하고 가위질은 한 번만 하라”고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보며 조직을 개혁하려 할 때 가장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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