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받고 있지만 정부 수립 초기부터 유독 아프리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럽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다는 역사적인 동질감을 연대의 끈으로 한 초기에는 자국 경제 추스르기에 힘겨워 지원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고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기 위해 아프리카 외교 강화 전략을 펼칠 때는 사정이 좀 달랐다. 성장가도를 시야에 넣고 있던 중국에 대외 원조의 여력이 제법 생겼기 때문이다.
중ㆍ일의 아프리카 지원 경쟁
중국은 원조의 50% 이상을 아프리카 국가에 할당하는 집중 전술을 펼쳤다. 미국과 유럽이 원조의 조건으로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내걸었지만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대만과 외교 단절하는 것말고는 아무 조건도 내걸지 않아 아프리카 각국의 마음을 샀다.
이렇게 공고해진 중국과 아프리카 관계는 마침내 일본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2005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때 유엔총회 의석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아프리카 국가 중 어느 한 나라도 일본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중국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반발해 아프리카 각국에 특사까지 파견해 가며 견제했기 때문이다.
일본이라고 이를 보아 넘길 리 없다. 아프리카를 지원하는 상설 협의체 아프리카 개발회의(TICAD)를 1993년부터 운용하고 있는 일본은 올해 5월 요코하마(橫浜)에서 열린 제4회 TICAD에서 2012년까지 아프리카 지원을 지금의 2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확대되면 일본을 지지해달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일본이 경제력에 바탕해 이같이 조용한 외교를 펼쳐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의 ODA 규모는 지난해 세계 5위로 다소 주춤했지만 2001년에는 10조원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지원국이었다.
한국의 지난해 ODA 규모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6,700억원이다. ODA가 사상 최대폭으로 늘었던 2005년의 국민 1인당 ODA 공여액은 15.2달러였다. 국민소득이 한국과 비슷한 포르투갈이 35.5달러, 그리스가 48.2달러, 뉴질랜드가 67.0달러, 스페인이 72.3달러였다. “한국의 기여 수준이 국제 위상에 걸맞지 않다”며 부끄러워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국제기여 늘리는 ‘고급외교’를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갈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 경우 힘의 논리로 이 문제가 재단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ICJ의 어떤 전례 때문에 그런 염려를 하는지 알지 못하나 다자간 외교의 장인 국제무대에서는 정치ㆍ경제력이 우세한 나라에 유리하게 의사 결정되는 경향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굳이 ICJ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국제사회가 독도 문제를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인식해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부지불식간에 이미 많은 나라들이 일본의 조용한 외교에 마음을 뺏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국제 기여가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일본을 맞상대해 독도 영유권 논리를 아무리 반복해도, 군대를 상시 배치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해 위력을 과시한다고 해도 결국 일본의 조용한 외교에 무릎 꿇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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