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다자회의에서 이미 확정된 의장성명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장성명 최종 발표 이전인 초안 단계에서 회원국과 의장국이 협의하고 수정할 수 있지만 확정된 다자회의 결과물을 변경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의장성명(Chairman's Statement)은 각 참가국들 사이에서 이뤄진 회담 내용을 외부로 알리는 일종의 선언적인 문건이자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의장국이 회의에서 나온 의제들을 묶어 발표하는 형식으로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이 때문에 성명을 삭제하는 절차는 형식적으로는 간단하다. 해당 회원국의 공식적인 삭제 요청을 의장국이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이후 최종 수정안을 인터넷 등을 통해 회원국들에게 공개하면 된다. 이번에 정부의 요청으로 의장성명이 수정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도 같은 케이스이다.
하지만 회담의 국제적 위상과 성격에 따라 의장 성명의 구속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경우 의장 성명은 정치적인 구속력을 갖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사후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각종 국제회담에서도 별도의 상임위원회나 사무국이 존재하면 성명의 격은 높아진다. 무엇보다 의장 성명은 발표 이전에 회원국들 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최종안을 논의하기 때문에 단순히 회담 결과를 기록하는 차원 이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 의장 성명이 발표되기 이전에 회원국의 항의나 설득으로 내용이 바뀐 경우는 있다. 노무현 정부 때도 그런 적이 있다. 2007년 1월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의장국인 필리핀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의장 성명에 포함시키려는 것을 우리 정부가 강력히 반대, 이를 사전에 삭제한 바 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역사는 길고 남북관계는 중요하다"고 언급, 일본인 납치문제 배제를 요구했다. 당시 송민순 외교부장관도 "납치된 일본인은 10여명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은 수백명이 있지만 대승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했다. 결국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일본인 납치문제는 '안전보장과 인도상의 우려'라는 표현으로 수정됐다.
그러나 이번처럼 의장 성명이 발표된 이후에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회원국 간 협의에서 이미 확정된 성명을 다시 삭제되거나 수정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며 "국제적 결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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