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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의 Who's Now] 발레리나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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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의 Who's Now] 발레리나 강수진

입력
2008.07.2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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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표현력과 감수성, 화려하고도 섬세한 테크닉,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 강수진(41)을 묘사할 때면 흔히 사용되는 수식어들이다.

15세이던 19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나 3년 후 동양인 최초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 1위 입상, 이듬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동양인 첫 단원 겸 최연소 단원 입단, 1999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무용수상 수상, 2002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종신단원에 이어 2007년 독일 궁정무용가(Kammertanzerin) 선정…. 이 불세출의 발레리나의 이력을 읊는 일은 이토록 숨가쁘다.

갈라 공연 <월드 발레리나 강수진과 친구들> (20일~8월1일)의 지방 순회를 위해 한국에 온 강수진을 만났다. 먼 무대에서도 도드라지던 크고 검은 눈동자를 가까이서 마주하니, 마치 <춘희> 의 마르그리트를 실제로 만난 것 같은 순간적 착각이 든다. 본인은 말머리마다 '중년이 되니까'를 붙이며 나이듦을 강조했지만, 마흔 한 살의 발레리나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 다른 발레리나들에 비해 참 크고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졌어요. 그래서 무대에서 보면 감정표현이 굉장히 또렷하게 잘 되는 것 같아요.

(웃으며) "플러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엄마 아빠한테 감사해야죠."

- 강수진 발레를 얘기할 때 흔히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카리스마가 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강수진 안에 어떤 성격과 감수성이 있길래 그런 걸까요?

"제 생각에 그건 타고난 것 같아요. 물론 배울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배울 필요는 없었어요. 왜냐면 이미 느꼈으니까. 감정표현이나 그런 건 특별히 연습하고 그런 게 아니라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몰두하면 자연스럽게 나와요,

어렸을 때부터. 마리카 베소브라소바(강수진을 픽업한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교장) 선생님도 오히려 테크닉 쪽보다 감수성과 필링 쪽을 훨씬 더 많이 보신 것 같아요. 테크닉은 언젠가는 비슷비슷해지거든요."

- 원래가 그렇게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성격이세요?

(팔을 크게 휘저으며) "아~니에요. 어렸을 때 굉장히 내성적이었어요. 친구들 사귀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 하고 원래 그래요. 지금도 그렇고. 무대에 서는 그때가 저한텐 제일 '프리'한 순간이에요.

외국에 살면서 나를 오픈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람들 관계도 문제가 없고 그렇지만, 그래도 제 자신이 제일 편안하게 느낄 때는 당연히 집, 제 신랑하고 강아지, 고양이랑 함께 있을 때, 그리고 무대 위. 무대에서 제 자신을 표현할 때가 제일 자연스럽고 프리덤을 느낄 수 있어요."

- 무용하면서 아름다운 얼굴 덕을 봤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좋은 점 얘기하는 거 너무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당연히 플러스겠죠. 꼭 아름답게 안 생겨도 특이하게 생긴 사람들은 무대에서 그게 개성이 될 수 있고, 아름다워서 개성이 될 수도 있고, 못 생겨서 개성이 될 수도 있는데, 그게 밍숭맹숭하면 제일 나쁜 거예요.

사람들 얘기가 조명을 잘 받으려면 예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자기의 개성,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잖아요. 무대 위에 서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요. 완전히 엑스레이 찍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장단점이 다 보여요."

- 주역 발레리나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사랑 연기를 참 많이 했어요. 실제 연애 경험도 많은가요?

"아니오. 신랑 만나기 전엔 거의…. 예술가라면 자기 자신이 경험을 안 했어도 어떤 역에 들어가면 그게 자연스럽게 나와요. 미처 모르고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 속엔 굉장히 여러가지 색깔들이 있거든요. 그걸 제가 발레를 하면서 많이 배워요, 제 자신을. 코미디를 할 수 있을지 저도 몰랐는데 하면서 저도 코미디적인 성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러니까 예술이란 자체가 저한테는 많이 배우게 하고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예요. 원래 내성적이고 사람들 못 사귀고 굉장히 그런데, 발레를 함으로써, 예술과 만남으로써 달라졌고, 제일 행복한 건 좋은 신랑 만났고…."

그가 자꾸 신랑 얘기를 꺼내니 여기서 그의 결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선배이자 동료인 터키 태생의 발레리노 툰치 소크멘과 15년에 걸쳐 우정과 사랑을 나눈 끝에 2002년 결혼했다. 지금은 발레를 그만두고 강수진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요리 잘하는 남편으로도 유명한 인물.

- 남편 얘기를 먼저 하셨으니까, 물을게요.

"하하하. 항상 남편 얘기를 많이 하게 돼요."

- 사랑과 행복은 감출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남편이 팔에 '수진'이라는 한글을 문신으로 새겼다면서요?

"네, 저도 놀랐어요. 2002년 이태리 공연을 갔다 돌아와보니 새겼더라구요. 늘 함께 있고 싶다고. 영어로 항상 얘기하는 게 'You're under my skin'(난 너한테 반했어)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나도 허리 같은 데 네 이름을 새기고 싶다고 했더니, 문신이라는 건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래요. 이건 아프잖아요, 새길 때. 새기고 싶으면 얘기하지 말고 그냥 새기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 어떤 분이세요, 남편은?

"굉장히 한국적이에요. 처음엔 몰랐는데, 터키 사람들이 문화, 정서, 먹는 것, 이런 것들이 아주 한국이랑 비슷해요. 그런데 성격은 달라요. 저는 하나만 아는데, 제 신랑은 여러가지 재주가 많아요. 생각하는 것도 저는 굉장히 단순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데, 신랑은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하면서 솔루션(해답)이 나오게 하고. 그런 건 좋은 것 같아요, 서로 다르니까.

하지만 먹는 것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굉장히 동양적이에요. 다른 사람이랑 산다는 게 원래 힘들잖아요. 근데 거기에다 문화, 정서가 너무 다르면 길게 봤을 때 더 힘들 것 같아요. 근데 신랑하고는 너무 비슷하니까 아주 다행이죠."

- 부부싸움 하신 적은 없어요?

"아우, 부엌에서 나가라는 게 싸움이에요. 얘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삐치는 경우는 있죠, 당연히. 특히 배가 고프면 삐쳐요, 얘가. 신랑은 배 고플 때 아니면 저한테 천사예요."

- 생활인 강수진으로 돌아가면, 가사분담 같은 건 어떻게 하세요?

"신랑이 음식을 너무 잘하고 그게 자기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당연히 청소하고, 빨래하고 보통 주부가 하는 건 다 하죠."

- 직접 다 하세요, 그걸?

"그럼요. 특히 마룻바닥이요. 옛말에 보고 배운다고, 저 자랄 때 우리 엄마가 청소기가 없을 때니까 항상 마룻바닥을 밀었어요. 아직 제가 그래요. 청소기 돌린 다음에 항상 마룻바닥 밀어요. 그래야 깨끗하잖아요.

저희 시어머니가 그걸 보고 발레리나가 엎드려서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기겁하신 적이 있어요. 근데 버릇은 못 버리겠더라구요. 제 신랑이 맨날 저보고 신데렐라라고 그래요. 그거 하고 있으면.

근데 음식은 남편이 해놓은 걸 그냥 먹기만 하면 돼요. 전세계 음식을 한번 먹어보면 다 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음식도 해주고, 음식에 관한 한 한국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알아요. 보통 극장에서 돌아오면 다 준비돼 있어요. 레드와인 한 병이랑. 저희들한텐 먹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제가 늘 48~49㎏를 유지해야 하는데 남편 음식은 라이트해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찔 걱정이 없어요. 맛도 있고. 저흰 맛있는 거 먹을 때면 둘이서 너무 즐거워해요. 생활 속에서 하나의 즐거움을 찾는 걸 잘하는 편이죠. 강아지들이 방귀만 뀌어도 '오호호호호' 좋아하고.(웃음) 행복해요."

- 실례되는 질문인데, 혹시 아기 계획은 없으세요?

"옛날에는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저희가 나이가 들어가니까. 신랑은 거의 50을 향하고 저도 마흔이 넘었고. 저희가 퍼그 강아지 두 마리가 있는데 얘들하고 너무 행복하게 지내요.

이 세상이 굉장히 복잡하고 나쁜 일이 많잖아요. 겁이 나요, 아이 갖는 게. 다음 세대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어떨 땐 아기 있으면 좋겠는데 싶다가 그 다음날엔 우리 강아지로 충분하다, 그렇게 마음이 계속 바뀌어요.

처음 몇 년 간은 아기 가지려고 굉장히 노력했거든요. 근데 진짜 노력하면 또 안 되는 거 있잖아요.(웃음) 시어머니까지 전화에 대고 막 그러셨어요. 그러니까 둘이서 스트레스 받아서 진짜 안 되더라구요.

요즘에는 마흔 넘어서 낳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아직은 괜찮고, 신이 주시면 하나 정도는 낳고 싶어요. 그런데 스트레스는 안 받고 살려고요. 없어도 괜찮은 게 저희 둘이 행복하니까요. 또 강아지들이 있으니까. 아기 갖기 전에 동물 키우는 게 참 위험한 거 같아요.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는 걸 배워버리니까."

강수진이 한국 공연을 올 때면 무용계엔 공공연히 이번이 마지막 한국공연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돈다. 마흔이 넘은 주역 무용수가 아주 드문 까닭이다. 세계적으로 서른 다섯 넘은 무용수 보기가 힘드니, 서른만 넘으면 이후의 진로를 모색해야 하는 게 무용계 풍토다. 불혹을 넘긴 강수진에게 은퇴계획을 물었다.

- 종신무용수가 됐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은퇴라는 걸 생각 안 해봤을 수가 없겠어요.

"그럼요. 당연히. 근데 오늘은 아니에요.(웃음) 발레 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걸 생각하게 돼요. 근데 저는 오히려 10년, 15년 전에는 무용 그만두는 날 뭐 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걱정 안 해요.

육체로 하는 거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죠. 하지만 운이 좋아서 건강하게 제 몸이, 제 마음과 두뇌가 하고 싶은 대로 따라올 때까진 할 거예요. 아직까지는 괜찮고, 오히려 옛날보다 더 즐기면서 하니까 그냥 감사드리면서 하고 있어요. 언젠가 은퇴하면 그때도 코치든 뭐든 발레세계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굉장히 단순하죠?"

- 그럼 조건들이 따라주면 60, 70살까지도 무대에 서고 싶으세요?

"아뇨, 아뇨.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아요. 발레라는 건 에스테틱(aestheticㆍ미학)이 있어야 되잖아요. 꼭 젊다고 에스테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제가 중년인데, 저는 제가 톱에 있을 때 그만두고 싶어요.

너무 늙어서 움직이지 않고 팔만 갖고 하는 발레는 슬퍼보여요. 그래서 제가 신랑한테 항상 꼭 얘기해달라고 말해요. 톱에 있을 때 그만두는 건 굉장히 힘들겠지만, 늙어서 기어다니면서 하는 건 제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안 돼요.

제가 믿는 사람은 신랑밖에 없고 늘 다이렉트로 얘기해 주니까 그 사람이 '지금이 그 때다' 그러면 아무리 슬퍼도 그만둘 거예요. 무대에서의 환호, 박수, 당연히 그립겠죠. 우리들 생활이 그건데. 하지만 아직 몇 년 간은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전 오히려 젊었을 때보단 지금이 훨씬 더 좋은 거 같아요.

이런 건 있죠. 나이가 들어서 큰 부상을 당하면 겁 나는 거. 이걸 회복해서 다시 할 수 있을지. 그럴 때 늘 감사한 게 우리 신랑이 참 도움이 많이 된다는 거예요. 아직 너는 다른 젊은 애들보다 더 젊으니까 괜찮다고 해주거든요."

- 나이 들면서 기량이 떨어진다든가 그런 거 느낄 때는 없으세요?

"저는 가면 갈수록 제 몸을 더 잘 알게 되니까 나이가 든다고 테크닉이 떨어진다든가 그런 건 못 느껴요. 오히려 전 지금이 좋아요. 한번도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웃음) 근데 만약 어렸을 때부터 테크닉으로 뛰어나면, 그런 애들은 나중에 좀 힘들어지는 거 같아요.

보통 탤런트 있는 애들이 더 게을러요. 쉬우니까. 조금이라도 '미싱'(missingㆍ빠진 것)이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하죠.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아도 어떤 면에선 공평하더라구요."

- 못생긴 발이 참 유명하잖아요. 울퉁불퉁한.

"제가 유독 발이 못생겼어요, 부상을 많이 겪어서. 다른 발레리나들은 보면 발이 예쁘더라구요. 옛날에는 샌들을 못 신었어요, 특히 한국에선. 예전에 발레리나는 발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배웠거든요.

또 창피하기도 하고. 그런데 마흔 넘으니까 너무 좋은 게 어느 순간부터는 발이 너무 아프니까 그냥 신고 다녀요. 요즘은 공연 보러 갈 때도 신는데, 사람들이 '샌들이 참 예쁘네요' 그래요. 우와, 나이드는 거 너무 좋아."(웃음)

- 일제시대 서양화로 유명했던 구본웅 화백이 외할아버지라면서요?

"네. 저희 어머니가 열살 때 돌아가셔서 직접 뵌 적은 없어요. 저희 어머니는 워낙 자식자랑도 안 하고, 겸손에 겸손, 그런 분이라 말씀을 안 해주셨는데, 저희 4남매가 나중에 할아버지가 외할머니를 그린 그림이 우표로 나온 걸 보고 알았어요.

참 예쁘셨거든요. 학교에서 배우곤 맨날 '한국의 로트렉' 이러면서 외웠는데, 나중에야 외할아버지인 걸 알았죠. 자랑스러웠어요. 제가 그 피를 받았으니까."

- 늘 동양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왔는데, 좀 식상한 질문 해볼게요. 동양인이어서 힘든 점, 있었죠?

"아, 다들 그렇게 물어보는데요, 그게 운이었는지 뭐였는지는 몰라도 저한테는 거의 플러스였어요. 88올림픽 전에 비자 받을 때 빼곤. 근데 제 주위에 있는 동양 사람들은 고생한 사람들이 더 많고, 그걸 제가 다 봤으니까 그 질문이 왜 나오는지 이해해요. 그래서 그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좀…."

- 작년에 발레리나 김주원씨가 누드 사진을 찍어서 시끌시끌했던 일이 있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진은 안 봤는데, 그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그게 자기가 원하면 하는 거고 자기표현이라면 하는 거죠, 민주주의니까. 하지만 저는 늘 반대예요. 저한테도 제안이 많았어요. 유럽에서도 그렇고. 그러나 제 대답은 항상 '노'. 왜 내 프라이빗(private)을 보여줘요? 특히 발레 하는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어쨌거나 우리는 몸으로 하는 직업이고, 어떤 때는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게 많잖아요. 딱 달라붙는 옷, 누가 봐도 다 보이는 거. 그런 데다 사진으로 해놓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봐요. 사람마다 취향이 있는 거지만 제 취향은 아니에요."

- 예전에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나도 발레를 하겠다는 질문에 '노'라고 대답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몇 년 전까지는 그랬어요. 저희 발레단이 오페라단과 오페라하우스를 같이 쓰잖아요. 항상 지나칠 때마다 '아아아~' 이걸 듣고 있으면 참 좋더라구요. 제가 노래를 듣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파바로티도 좋아하고. 그래서 다음 세상에는 오페라 성악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발레라는 게 노래를 할 수 있으면 뮤지컬도 할 수 있고, 그럼 제 예술인생이 길어지잖아요. 그런데 40이 넘어가면서 다시 태어나도 발레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또 바뀌었어요. 근데 발레를 다시 해도 노래는 좀 잘했으면 좋겠어요. 아, 지금은 재능이 너무 없어요."

사진=조영호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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