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의 책] 가만히 좋아하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의 책] 가만히 좋아하는

입력
2008.07.25 08:48
0 0

김사인 / 창비

인사동 네거리 뒷골목에 2년쯤 전에 ‘가만히 좋아하는’이라는 간판을 단 주점이 있었다. 평소 시인, 화가들이 드나들고 전시회 뒤풀이 등 모임도 열리곤 하던 곳이다.

궁금해서 여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주점 이름을 시인 김사인(52)의 시집 제목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 집 간판이 ‘시인’으로 바뀌었지만, 한동안 ‘가만히 좋아하는’에 가끔 들르곤 했다.

<가만히 좋아하는> (2006)은 김사인이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 (1987) 이후 19년만에 낸 두번째 시집이다. 19년이라. 그 사이 그는 ‘노동해방문학’이라는, 1980년대말이라는 시절에 불온하기 그지없었던 문학지의 창간발행인을 맡았다가 쫓겨다녔고, 작가회의의 살림꾼도 했다가, 오랫동안 불교방송의 DJ도 했다. 더없이 순해 보이기만 하는 웃음과 말투의 그에게 하나도 안 어울릴 것 같은 일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외도 아닌 외도를 하다 19년 동안이나 시집을 내지 않은 이 시인의 불충은 <가만히 좋아하는> 한 권으로 모두 용서될 듯하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참으로 깊고 그윽하다. 그는 언어와 몸짓의 아무런 과장도 허세도 없이 ‘가만히’, 우리 쓰라린 삶을 드러내고 위무한다. 두 편의 시만 인용해 본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 든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정말 고마운 것이다’(‘조용한 일’ 전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노숙’ 전문).

하종오 기자 joha@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