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 창비
인사동 네거리 뒷골목에 2년쯤 전에 ‘가만히 좋아하는’이라는 간판을 단 주점이 있었다. 평소 시인, 화가들이 드나들고 전시회 뒤풀이 등 모임도 열리곤 하던 곳이다.
궁금해서 여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주점 이름을 시인 김사인(52)의 시집 제목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 집 간판이 ‘시인’으로 바뀌었지만, 한동안 ‘가만히 좋아하는’에 가끔 들르곤 했다.
<가만히 좋아하는> (2006)은 김사인이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 (1987) 이후 19년만에 낸 두번째 시집이다. 19년이라. 그 사이 그는 ‘노동해방문학’이라는, 1980년대말이라는 시절에 불온하기 그지없었던 문학지의 창간발행인을 맡았다가 쫓겨다녔고, 작가회의의 살림꾼도 했다가, 오랫동안 불교방송의 DJ도 했다. 더없이 순해 보이기만 하는 웃음과 말투의 그에게 하나도 안 어울릴 것 같은 일들이다. 밤에> 가만히>
하지만 그렇게 외도 아닌 외도를 하다 19년 동안이나 시집을 내지 않은 이 시인의 불충은 <가만히 좋아하는> 한 권으로 모두 용서될 듯하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참으로 깊고 그윽하다. 그는 언어와 몸짓의 아무런 과장도 허세도 없이 ‘가만히’, 우리 쓰라린 삶을 드러내고 위무한다. 두 편의 시만 인용해 본다. 가만히>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 든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정말 고마운 것이다’(‘조용한 일’ 전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노숙’ 전문).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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