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 시내에서 북서쪽 외곽으로 난 1차선 도로를 30분쯤 달리면 영인중학교가 나온다. 인가 드문 언덕배기에 있는 전교생 145명의 시골학교, 여름방학까지 맞아 호젓할 법한 이곳이 21일 학생들이 펼치는 시의 향연으로 한나절 내내 왁자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사무국 주관으로 10월말까지 전국 53개 중ㆍ고등학교에서 학교별로 열리는 ‘2008 전국 청소년 시낭송 축제’의 현장이었다.
방학 중 자율 참여로 열렸는데도 이날 전교생의 절반에 가까운 64명이 행사장인 도서관에 자리했다. 오전 무대엔 김소월ㆍ윤동주ㆍ이해인 시인으로 분장한 세 학생이 나와 다른 학생들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하는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가 진행됐다.
TV 오락 프로그램인 <1박2일>에서 이달 초 소개된 중국 용정 윤동주 생가의 열악한 보존 상황, 가수 마야의 노래로 만들어진 <진달래꽃> 등을 소재로 재치 있는 문답이 오갔다. 진달래꽃>
오후엔 행사 하이라이트인 시 낭송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10개팀 22명은 시로 뮤지컬과 랩송을 공연하고, 준비한 영상을 곁들여 자작시를 낭송하고, 경상도 사투리로 시를 짓는 등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에 시를 솜씨껏 버무렸다.
한 참가 학생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엉뚱한 영어로 번역해 폭소를 일으켰다. 1등상은 원더걸스의 노래 ‘So Hot’의 가사를 유명한 시들로 바꿔 코믹한 안무와 함께 부른 남학생 4인조가 차지했다.
참가 학생인 박현구 군은 “시를 갖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끝까지 다 읽어야 내용을 알 수 있는 소설과 달리 짧으면서도 구절마다 다른 경치가 펼쳐지는 시의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이순옥 교사는 “학원 교육에 찌들지 않은 시골학교 학생들이라 그런지 시를 재미있어 하고 풍부한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지역 시인으로 행사에 초청된 최은숙 청양중 교사는 “운율ㆍ행갈이 등 형식적 요소에 얽매이지 않고 생활 속 이야기로 편하게 시를 지어보고, 시를 극이나 이야기로 만들어보는 등의 과정을 통해 시를 읽는 눈을 틔울 수 있다”면서 ‘즐기는 시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전국 청소년 시낭송 축제’는 시를 낯설고 어렵게 여기는 청소년들에게 시의 즐거움을 알리려는 취지의 연례 행사다.
51개 학교에서 열린 지난해 첫 행사에선 이상의 시 <오감도> 를 모티프로 제작된 컴퓨터 게임을 비롯해 퍼포먼스, 연극, 뮤직비디오, 수화 등 다채로운 형식의 시 공연이 펼쳐져 청소년 향유 문화로서 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감도>
시낭송 축제 홈페이지(nangsong.munjang.or.kr)에 가면 참가 학교에서 올린 행사 동영상ㆍ사진ㆍ오디오 파일을 감상할 수 있다. 올해 우수 공연들은 11월22일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 내 공연장에서 열리는 ‘시낭송 축제 기념 콘서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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